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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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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7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9 - 7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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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은 당의 지배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대응하였다. 부흥운동은 그 중 하나였다. 고구려 고지의 상황은 당 조정의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이는 669년 8월 당 고종의 涼州 순행 시도와 좌절을 전하는 사료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부여성 권역에서 상당한 규모로 고구려 유민들이 당의 지배에 저항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당 고종의 순행을 반대하는 첫째 이유로 제시될 정도였다. 부여성 권역의 고구려부흥운동은 당의 기미지배에 협력했던 재지유력자들이 재차 당의 지배에서 이탈하면서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며, 송화강 유역에 거주하던 속말말갈의 일부도 동참하였다. 부여성 권역의 군사적 가치를 인지하고 있었던 당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당에 귀부한 고구려 유민 李他仁을 파견하였다. 이타인의 군사활동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어 부여성 권역의 부흥운동은 소강 내지 진정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673년 윤5월 이전에 일어난 벌노성 전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부여성 권역에는 부흥세력이 잔존한 상태였으며, 당시까지 당의 지배가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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