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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전문학회 고전문학연구 고전문학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69 - 19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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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 실재하며 의미가 있다는 체험을 하는 것을 엘리아데는 거룩함, 성스러움의 체험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초공본풀이>도 심방과 청중이 거룩함, 성스러움의 체험을 하게 하여 자신과 세계를 성화하는 의례 체계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 <초공본풀이>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노가단풍 자지멩왕 아기씨의 삶은 지리멸렬할 뿐 거룩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신으로 좌정한다. <초공본풀이>의 어디서 심방이나 청중은 성스러움을 체험할까? 아기씨는 어떻게 해서 신이 되었는가? 거룩함은 삼멩두의 것이고 아기씨 몫은 여성의 삶에 대한 공감 정도로 그치는 것인가? 아기씨의 삶 자체로 거룩함을 확보할 수는 없는가?<초공본풀이>는 네 단계로 서사적 맥락을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轉落의 서사’이다. 부잣집 외동딸이 소종래를 알 수 없는 남자를 만나서 임신하고 집을 나와서 낯선 곳에서 혼자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보면 이야말로 비속한 저잣거리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단계는 앞의 전락을 상쇄하는 ‘上昇의 서사’이다. 비천한 존재에서 고귀한 존재로의 상승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현실적인 소망으로 읽히거나 민담적 비약으로 수용될 뿐 거룩함의 차원으로까지 상승하지는 못한다. 다음 단계는 다시 ‘전락의 서사’이다. 과거에 합격한 삼형제가 위풍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고향의 어머니가 죽고 만다. 삼천선비의 모략에 의한 불행이다. 합격의 취소와 어머니의 죽음, 이 둘은 간절했던 소망을 무화시킨다. 네 번째 단계의 서사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이제 삼형제는 과거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살리러 길을 떠난다.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하고 초월적인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이는 일상 삶의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로의 방향 전환이다. 이 네 번째 단락에서 바로 성스러운 세계로 진입한다. 그 전까지는 俗의 세계를 그렸다. 속의 세계는 불행과 고통으로 점철된다. 그것은 이유를 모르거나 또는 이유를 알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 굿의 현장을 사는 이들은 삶을 ‘부질없는 고통’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죽어서야 끝난다. 노가단풍 아기씨의 죽음은 이 삶의 부질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 노가단풍 아기씨의 삶의 여정, 전락-상승-전락을 모두 겪고 심지어 죽음까지 겪기에 아기씨는 신이 될 수 있다. 삶의 고난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깊이 알고 있기에 사람들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전락-상승-전락의 삶의 과정을 겪는 보통 사람들은 노가단풍 아기씨의 삶에서 삶의 전범을 본다. 아울러 그런 부질없는 고통인 삶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의 삶에 <초공본풀이>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노가단풍 아기씨가 겪었던 삶의 고난은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자신들의 것이기도 하다. 없는 살림에 힘겹게 아이를 길러내는 모습은 모든 어머니들이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공본풀이>의 전반부가 왜 그렇게 비속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제주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씨와 삼멩두가 신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상의 삶을 살면서도 여성들의 가슴에는 아기씨나 삼멩두가 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이들처럼 초라하고 비속한 삶을 살았던 아기씨가 신이 된 것이다. 고단한 삶을 벗어나 다른 존재,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 더 높은 무엇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빛처럼 가슴에 남는다. 이런 빛을 가슴에 가지고 있으면 그 일상은 더 이상 비속함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된다. 방향 없는 삶이 아니게 된다. 무언가 나은 것, 더 높은 것을 향하는 삶이 된다. 일상의 비속함을 참고 견딜 뿐 아니라 그것을 포용하면서 더 크고 넓은 자아가 된다. 스스로 성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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