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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중국어문학회 중국어문학 중국어문학 제60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09 - 13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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众所周知,曾国藩参看和吸取汉赋的书写手法,以改善了桐城派的弊端,奠定了其复兴之基。不过,当时是离汉学兴旺的乾嘉年间不久,因此到了曾国藩那一时代,汉学仍然占据学术上的优势。要考虑如此情况,曾国藩为何接受桐城学派,是很难理解的。为了找到其线索,首先,我们要考虑湖南学风。湖南历来被誉为“理学之邦”,宋学传统面面传承下来,四处洋溢着“有体有用之学”风气,汉学则不太受欢迎。加之,当时经世致用的学风兴起了,汉学逐渐被视为无用之学,这使得湖南人士对汉学予以激烈的批评。当地某人士甚至说,太平天国运动便是因汉学之弊而造成的。曾国藩即使不同意如此主张,整体来看,他的思考也很难摆脱湖南学术传统。这可能是他对桐城学术有好感的基本背景。还有,他在文论上重视“雄奇之文”,像钱基博所说的那样,这也有可能来自“犟有力”。曾国藩也在湖南学风的熏陶之下起初对汉学没有任何兴趣,而成了京官,在跟一些学者交流的过程中才始有兴趣了。这表示他不仅是固守门户之见,反而广泛摄取当时学术成果,以期重新构筑桐城学术。要注意的是,他深为感叹汉学成果,并且对一些汉学家深有钦佩之情,是超乎我们所意料的程度。据考察,这是因为段玉裁、王念孙等以训诂辨析出汉赋书写的长处,即是每个词汇都非常正确地安排的。看来,这引起他对汉学重新评价,高度重视。如此一来,他依靠汉学的成果,看中汉赋书写,并且注目书写上训诂的重要性了。在这一点上,他对杨雄、韩愈颇有仰慕之情,特别是,据他理解,韩愈虽是古文家,而他的书写也接近于汉赋,也运用颇为正确的词。同时,他不满于当时古文家的书写,是因为气势不振,仍失于空疏。结果,他摸索吸取汉赋书写,要给桐城的古文加以雄奇风格。值得注意的是,他救济当时古文书写之方是,反而言之,和当时汉学对桐城派的批评同调的。从中看出,他所构筑的文论是从桐城派书写有限的认识出发,参考汉学理论成就的。可谓是,曾国藩的文论在和汉学交互作用之下形成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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