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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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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47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69 - 9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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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文言文으로 작성된 전통적인 한문산문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출현한 壽序를 통해 宣祖 연간 복고적 문풍의 형성 원인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사실성, 진정성에 관한 시비에 휩싸이곤 했던 碑誌文의 경우처럼 長壽를 축원하는 수서 역시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 쉬운 장르의 글이다. 때문에 이런 시비에서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운문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明代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산문으로만 지어진 수서가 등장하게 된다. 당시 강남 지역에서는 풍부한 경제력에 힘입어 집안 어른의 壽宴을 여는 일이 일반화되었는데, 문단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었던 王世貞과 歸有光 등도 이 지역을 배경으로 성장한 문인이었다. 평소 강남 지역 특유의 문화에 익숙했던 문인들은 고문가들의 관심 밖에 있던 수서의 창작에도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이 가운데서도 귀유광은 진정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수서를 다량 창작함으로써 수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희석하고, 독립적 문체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하도록 만들었다. 조선의 경우, ‘學明’의 풍조 속에서 고문사 창도를 주도했던 尹根壽가 黃廷彧의 생일을 기념해 지은 「芝川壽序」가 지금까지 확인된 최초의 수서이다. 명 복고파의 영향이 이론적 층위에서는 물론 실제 창작의 영역에까지 미쳤음을 시사하는데, 이는 윤근수와 비슷한 시기에 수서를 지은 柳根·申欽·張維 등도 모두 명 문단에 깊은 관심을 보인 작가들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선조 연간에 등장한 수서는 단지 명 복고파를 추수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지만 그 주제나 내용, 표현방식이 상당히 다양해서 일정한 문학성을 갖춘 수서의 등장을 견인할만한 역량이 문단 내부에 이미 갖추어져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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