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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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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59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21 - 24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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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조선후기 호학군주로 불렸던 정조가 당시 문체와 문풍의 폐단을 밝혀 올바로 확립하고자한 文章觀에 대해 살펴 보고자하였다. 즉 문장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道는 무엇이며, 무엇을 바탕으로 본받고자 하였고, 또한 무엇을 통해 醇正한 문장으로 회귀하고자 하였는가? 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정조가 살았던 18세기는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시기로써 시대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문학적 기반을 형성하는 때였다. 조선 문단을 지배해 오던 사대부 문학은 文을 道를 담는 그릇으로 인식하였다. 문은 미의식의 추구보다는 다만 도덕의 구현을 중요시하였다. 정조는 이 같은 보수적 문학관에 동조하여 문과 도의 관계에 있어 道文一致를 강조하였고, 그 모범으로 六經을 제시하며 최고의 문장으로 꼽았다. 육경이야말로 인의ㆍ도덕의 실체를 담고 있으며, 국가의 성대함을 알리고 후세에 전범으로 전할 만한 기상과 이치가 담겨져 있다고 여겼다. 정조는 문장의 성쇠와 정치현실이 밀접하게 연관 되었다고 믿고 문장에 대해 군왕의 입장에서 치교나 세도와 연관시켜 접근하였다. 當代의 문장이 날로 비리해지고 타락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하여, 순정한 문장을 쓸 것을 제시하였고, 이를 귀정시킬 문장의 전범으로 천자의 계획을 보좌할 수 있고 치세의 기상을 징험할 수 있는 唐宋八家文을 꼽았던 것이다. 정조가 당송팔가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군왕의 입장에서 볼 때, 문체와 문풍의 쇠락을 막고 개국 초기의 순정함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소설과 패관소품문에 대해 매우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소설은 잡된 글로 치세의 글이 아니라며 비판하였다. 이 같은 인식은 소설의 문체에도 이유가 있었지만 소설에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이다. 즉 조정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사회 전체가 타락하는 시대상을 묘사하거나 기존의 지배계급을 부정하고 새로운 계급체제를 형성하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군왕으로서 당연히 경계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정조는 道文一致의 문장관을 피력하였고, 이런 문장이론은 六經을 바탕으로 한 唐宋八家文으로서 표출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정조의 문장에 대한 견해는 대부분 군왕의 입장이 크게 반영되어 保守的 傾向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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