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36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95 - 118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연구는 6·25전쟁 이전 북한 지도부 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북로당계가 남한 내 지구당 게릴라에 대해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었으며,그것이 남침 결행과 직접 관련이 있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전쟁 이전 북로당계와 남로당계는 무력통일론(국토완정론)에 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게릴라운용에 관한 군사전략 방침에 있어서는 큰 이견을 보이고 있었다. 박헌영 등 남로당계는 북한정권 내에서 자신의 입지와 관련하여 남한 내 지구당과 빨치산 활동에 대해 큰 기대를 두고 있었던 반면,전쟁계획을 주도한 김일성 등 북로당계는 정규작전에 의한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하되 일부의 비정규전 부대를 운용한다는 방침이었다. 김일성을 비롯하여 전쟁을 구상하고 주도한 북로당계의 입장은 정권수립 직후부터 남한 내 빨치산 활동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 입장이었고,그러한 입장은 남파유격대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1949년 후반기부터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북로당계는 남한 내 지구당 활동을 지원하는데 대단히 소극적이었으며,북한군의 선제타격작전에 의한 전면남침 시 지구당 빨치산이 아니라 남파유격대,제766부대,제549부대 및 사단 내 유격대대 등의 역할에만 기대를 걸고 있었다.김일성은 남한 내 ‘20만 민중봉기론’에 대해서는 애당초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북로당계는 소련 군사고문단과 함께 전쟁을 계획할 때 남로당에서 제기한 ‘20만 민중봉기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실제 남침이 개시된 직후 ‘민중봉기’가 발생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김일성이 ‘민중봉기론’에 기대를 걸고 남침을 결행하게 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그러한 주장은 사후에 북로당계에서 남로당계를 정치적으로 숙청하기 위해 내걸었던 내용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1)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