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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34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9 - 3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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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고려는 약 30년간의 대몽항전을 종식하면서 1259년에 강화를 맺은 이후 몽골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반에 걸쳐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271년 11월에 쿠빌라이가 국호를‘大元’으로 개칭하였고, 당시 태자이던 충렬왕이 원의 공주와 혼인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양국과의 관계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러나 당시 고려의 대외 정세는 원에 의한 2차례의 일본 원정과 東方王家의 반란과 같은 원 내부의 격렬한 내전에 참전하는 등 타의에 의한 전쟁 체제가 지속되면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충렬왕 즉위이전 당시 고려의 군사력은 무신정권 이래 공적인 군사조직인 상비군이 무신집정이라는 개인에게 예속되어 점차 약화되었고, 대몽항전 이후에도 대외전쟁을 치를 수 없을 만큼 그 기능이 떨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충렬왕은 원의 부마라는 위상을 배경으로 왕권 및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였는데, 2차 일본원정 준비와 관련하여 원 세조에게 일곱 가지의 요청사항을 전달하여 이를 승인받은 것이 그 계기였다. 여기에는 독자적인 호구조사권, 고려국왕의 萬戶 임면권, 군 통수권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쿠빌라이의 승인을 통해 고려는 군사력 확보 및 작전수행에 있어 원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물론 다분히 원의 입장에서 일본정벌을 위한 임시적이고 제한적인 상황하에 고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고려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강화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원정 이후 얼마 뒤에 벌어지는 합단군의 고려침공과 그에 대한 대응을 통해 보다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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