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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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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34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19 - 25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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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ㆍ25전쟁기 강경경찰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강경경찰서 전투와 대둔산지구 전투를 정교하게 정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한반도 서남부인 충남-호남-경남 축선을 따라 남하한 북한군은 1군단 예하의 제6사단이었다. 일시 후퇴하였던 강경경찰서 병력은 북한군 전주편성관구사령관의 복귀 명령에 따라 7월 16일 밤 다시 강경에 진입했다. 그리고 곧바로 강경지역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7월 17일 강경에 나타난 북한군 제6사단으로 인해 강경 경찰은 고립되었다. 전투는 시가전 형태로 7월 17일 초저녁부터 진행되었다. 전사자가 속출했다. 열세를 감지한 정성봉 서장은 후퇴 명령을 내려 30여 명의 대원들과 함께 강경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7월 18일 낮 11시 30분쯤 결국 현장에서 대부분 전사하였다. 그들을 포함 당시 희생당한 강경경찰서 대원들은 모두 83명에 달했다. 그 얼마 뒤 강경경찰서는 다시 대둔산지구 對 빨치산 작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충남의 빨치산들이 강경경찰서 관내인 대둔산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조선로동당 충남도당이 대둔산에 들어간 것은 1950년 10월 초순이었다. 그들은 처음 논산군 양촌면에 지휘부를 두고 1,000여 명의 병력을 백두산부대와 압록강부대 등 여러 개의 부대로 나누어 운영하며 후방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였다. 대둔산전투경찰대는 이때부터 4년이 넘게 모두 4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그중에는 국군 및 전북경찰대와의 6회에 걸친 합동작전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대둔산전투경찰대는 빨치산 사살 2,287명, 생포 1,025명의 전과를 올렸으며, 의용경찰 및 애국단체원을 포함 모두 1,37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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