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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31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83 - 10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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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최고 통수권자는 왕이었다. 고구려의 군대는 왕명에의해서만 동원될 수 있었고, 왕의 승인 없이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반역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군사제도는 신대왕 이후 내병과 외병으로 분리·운영되었다. 내병은 기내(機內)에 주둔하면서 국왕의 호위와 수도의 경비·방위 등을 담당하였고, 외병은 각 지방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외병의 개별 군사력은 내병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리고 내병은 직업 군인인 무사층과 생산 노동에 종사하면서 징병제에 따라 징발된 농민층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고구려의 지방군 체계는‘대성-제성-성’의 3단계로 조직되었고, 각 단계의 지방관들은 상하복속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방군 체제는 조선전기의 진관체제와 유사하였다. 백제는 기원전 1세기에 마한의 한 소국으로 출발하였다. 백제는 온조왕 대에 4부를 설치하였는데, 동·북부에 무사집단인 유이민을 집중 배치하여 국방을 담당하게 하고, 서·남부는 농사를 짓는 토착 마한인을 거주시켜 식량 생산에 주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백제 초기의 군사제도는 고이왕 대에 이르러 중앙군과 지방군이 형성되면서 새롭게 정비된다. 즉 백제의 통치체제는 고이왕대 이후 중앙의 4부와 지방의 담로제로, 그리고 사비시대에 이르러 중앙의 5부제와 지방의 방-군-성 체제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러한 통치체제의 정비와 발맞추어 군사조직도 정비되어 갔다. 고이왕대 이후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분화되었고, 사비시대에 이르면 중앙군은 5부제로, 지방군은 방-군-성제로 정비되었다. 신라는 진한 지역의 6개 부가 연합하여 건국되었다. 초기에 6부병은 대략 1,000명정도로 구성되었는데, 정복 전쟁이 활발하게 전개됨에 따라 군액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병력의 증강은 정복된 소국의 병력이 함께 동원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즉 신라는 정복한 소국을 군(郡)의 형태로 편제하고, 이러한 군의 병력을 6부병과 함께 전쟁에 동원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의 군사조직은 내병과 외병으로 분리되었다. 내병은 중앙군으로서 6부병을 가리키고, 외병은 군의 병력을 지칭하였다. 이사금 시기의 군사조직이 6부병제로 운영되었다면, 마립간 시기의 군사조직은 2부병제로 운영되었다. 이후 2부병제는 중고기에 들어와 일원적 지휘체계로 재편된다. 이것은 법흥왕 3년의 병부령 설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법흥왕은마립간과 갈문왕이 훼부와 사훼부를 공동 관리하는 2부병제를 재편하여 국왕이 2부병 모두를 통수하는 대왕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진흥왕 대에 들어서서 2부병은 다시 대당(大幢)으로 개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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