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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부산고고학연구회 고고광장 고고광장 제8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27 - 6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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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의 발전에서 대외교역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남해안을 중심으로 왜와 군현을 연결하는 지리적위치와 풍부한 철 자원을 통해 성장한 변한은 철기의 제작기술 뿐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하는 교역망의 정비를 통해 발전해 나갔다. 대외교역의 획기는 크게 III기로 구분이 가능한데, 서부경남을 중심으로 마한과 교역하는 I기, 내륙을통해 한군현과의 교역이 중심이 되는 II기, 바닷길을 통해 왜와의 교역이 중심이 되는 III기로 나눌 수있다. Ⅰ기는 삼한이 시작되는 기원전 4세기, Ⅱ기는 준왕의 남하하는 기원전 2세기 초, Ⅲ기는 진한에서 변한으로 청동기 제작과 왜와의 교섭이 바뀌는 기원후 1세기 후엽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렇게 교역의대상지는 변화하지만 변한 내에서의 교역의 중심은 구야국이 존재한 김해로 집중화가 진행된다. 또한 한반도 남부와 왜를 비교할 때, 일견 왜가 漢문화의 수용에 좀 더 조직적이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왜-특히 北部九州에서는 많은 漢의 문물이 확인된다. 변한지역은 문헌에 기록된 바와 같이 철을 매개로 많은 지역과 교역을 하였지만, 남아 있는 유물은 상대적으로 격이 낮거나양적으로 풍부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는 변한의 각 세력들은 시장교환이라는 방식을 통해 각기 독자적으로 교역이 이루어졌던 반면, 왜는 수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화된 교섭체제로 하위집단에게는 중심집단이 재분배하는 구조였고, 변한 사회가 청동기보다는 철기에 더 치중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내륙루트를 이용하여 교역하던 진한과 바닷길을 이용하던 변한이서로 경쟁적 관계에 있었지만 Ⅲ기부터 바닷길을 이용한 교역망을 원활히 운영하던 변한이 불안정한내륙망을 가지고 있던 진한보다 교역에 있어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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