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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10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39 - 306 (6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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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국의 3대 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이퇴계・이율곡・정다산의 학이 일본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본다. 본고의 주된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가 중국 원명(元明)의 여러 학자들을 제치고 오직 이퇴계만을 주자의 정통을 얻은즉 주자학의 충실한 계승자라고 단정하고 나서 일본에서는 그 평가가 일반화되고 고정화되었다. 그리고 한국유학이라고 하면 거의 이퇴계만이 주목을 받게 되는 정도가 되었다. 둘째, 일본의 한국유학(이라기 보다 퇴계학) 인식은 구마모토 실학파(熊本實學派)의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가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시강(侍講)이 되고 이퇴계에 심취한 오오츠카 타이야(大塚退野)의 학을 메이지 천황에게 가르치면서 퇴계학의 심법(心法)이 천황에게 전해졌다고 하는 담론이 나타나게 된 1897년 (明治30年) 무렵을 고비로 크게 바뀌었다. 그전에는 개인의 학자가 이퇴계의 『자성록(自省錄)』, 『주자서절요 (朱子書節要)』 등을 읽으면서 수양공부를 하고 도덕을 닦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퇴계학이 고대 중국의 요순(堯舜)・공맹(孔孟)・정주(程朱)의 도와 일본을 연결시키는 중계거리로써 이용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서 이퇴계는 “메이지의 정신”과 결부되고 일본의 도의국가(道義國家) 담론에 포섭되고 말았다. 즉 메이지 천황이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이퇴계를 매개로 요순공맹의 도까지 이어받은 성천자(聖天子)의 위치에 끌어올리고 천황의 신격화시키고 천황 중심의 가치체계를 확립시키기 위해 주자학의 충실한 계승자로서의 이퇴계가 이용당하게 된 것이다. 세째, 일본의 한국유학에 대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퇴계학에 편중되고 있다. 이것과 매우 대조적으로, 율곡학・다산학 등은 거의 일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아니 일본인에 의한 율곡・다산 연구가 겨우 시작된 것은 한국이 식민지화된 이후의 일이었다. 한국 유학은 이퇴계의 주리파(主理派) 철학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하되, 곧 그것과 맞서기 위해 이율곡의 주기파(主氣派)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 후의 조선왕조에서는 학문과 정치가 직결되면서 주리파와 주기파의 전쟁터가 되고 나라의 발전과 근대화가 저해되었다고 하는 역사가 그럴듯하게 이야기되었다. 일본인의 이퇴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적지 않아 한국인・한국역사・한국사상 자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표리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 사상사의 죄수가 된 이퇴계를 구출해내기 위해선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이퇴계, 이율곡, 그리고 정다산과 기타 한국 사상가를 다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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