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日本學硏究 日本學硏究 제32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5 - 18 (1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다이쇼(大正) 황후, 구조 사다코(九条節子)는 15세의 나이로 1900년에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 요시히토(嘉仁)와 일부일처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녀는 황실 역사상 처음으로 현대적인 가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한, 천황과 황후가 된 후, 요시히토와 사다코는 황실의 별장 (고요테이:御用邸)에서 여름과 겨울을 지내면서, 현대적인 생활스타일을 유지했다. 하지만 요시히토의 건강이 악화되자 사다코는 점점 보수적이 되었고, 그녀는 궁중제사와 남편의 건강회복을 위한 신과 조상들에 대한 기도에 힘을 쏟았다. 또한, 그녀는 장남 히로히토(裕仁:1921년에 섭정, 1926년에 천황 즉위)에게 진심으로 믿고 기도하지 않으면 신벌(神罰)이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1924년 이후, 사다코는 신앙심이 더욱 깊어져, 예를 들어, 가케이 가쓰히코(筧克彦)의 ‘신그대로의 길(神ながらの道)’를 배운다. 1926년에 요시히토가 사망하자, 그녀는 황태후가 되었는데, 오미야고쇼(大宮御所)에 많은 여관(女官)들과 지내며, 황거(皇居)와는 별개의 권위를 확립한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니혼쇼키(日本書紀)』 속의 가공인물인 진구황후(神功皇后)에 빗대며 진구황후가 삼한을 정벌한 것처럼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의 단호한 생각은 히로히토가 전쟁종결을 주저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본 논문은 다이쇼천황의 병환이 황후의 신앙심에 미친 영향과, 나아가 그녀가 쇼와천황에 미친 영향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