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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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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53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65 - 82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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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중의 교통로에 대해서는 조선의 한양과 명·청의 燕京 간 사행로가 주목받아 왔다. 그렇지만 연경까지의 교통로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었던 것은 고려·원 시기부터였다. 그런데 원은 大都(燕京)와 함께 上都를 두어 兩京制를 운영하고 있었다. 개경과 大都 간의 교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이루어진 상태이지만 개경과 上都 간의 교통에 대해서는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려와 명의 교통에 대해서는 해로에 대해 언급하였을 뿐 육로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개경과 上都 간, 대도와 상도 간의 교통로, 그리고 원·명교체기 개경과 연경의 교통로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개경과 上都 간의 교통로로 네 개의 노선을 확인하였다. 遼陽→ 昌義縣→ 懿州→ 北京 등을 경유하여 上都 開平府에 도착하는 노선은 瀋州를 거쳐 가지 않은 길이었다. 遼陽→ 瀋州→ 懿州→ 北京 등의 경로는 요양에서 북상하여 심주를 통과해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析津志󰡕에 의하면 北京→ 狗羣→ 新店→ 上都 등의역로가 있었다. 네 번째 노선은 懿州에서 北京을 거치지 않고 高州로 하여 상도로 가는 직로가 있었다. 고려에서 懿州, 北京(大寧)을 거쳐 상도로 가는 길은 북방의 내륙을 통과하는 교통로였다. 원은 대도와 상도의 兩京을 운영하여 대도와 상도 간의 교통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곡의 「灤京紀行」에 따르면 그 길은 大都→ 居庸關→ 雲州路→ 李陵臺→ 灤河→ 上都 開平府로 이어졌다. 황제가 일 년에 한번 상도로 순행을 갔음으로 고려의 사행도 상도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원·명 교체기에 요동을 두고 원·명이 대립하자 요동을 통과하는 使行은 원활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고려와 명 남경 간의 사행은 해로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명에 계속해서 예전의 요동 교통로를 통해 사행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권근은 창왕 1년(1389) 6월에 使命을 받들고 명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행로는 開京→ 鴨綠江→ 湯站→ 開州城→ 龍鳳站→ 連山站→ 蚶水站→ 頭舘站→ 遼東城→ 鞍山驛→ 牛莊驛→板橋驛→ 十三山驛→ 沙河驛→ 山海衛→ 楡關→ 永平→ 薊州→ 北平城(前元舊都) 등이었다. 이러한 사행로는 고려와 명이 해로뿐만이 아니라 육로로도 교통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권근의 육로 사행로는 조선시대의 ‘연행길’과 유사한 경로였다. 즉 조선과 명의 사행로는 이미 고려말에 확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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