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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31 - 26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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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성립 시기 몽골 지배층은 지상의 모든 지역과 사람들을 복속과 전쟁의 대상으로 양분하고 복속하지 않은 민족・나라를 향후 무력을 동원하여 반드시 복속시켜야 할 ‘적국’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그들은 쿠빌라이 시기 일본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집요하게 복속을 요구했다.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자 미복속국을 정벌의 대상으로 삼는 전통적 대외정책 방침에 따라 두 차례 일본을 침공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 후 쿠빌라이 사망을 계기로 일본정벌 계획이 완전히 방기되었지만 몽골 지배층의 관념 속에서 미복속국 일본을 ‘유일한 적국’으로 보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일찍부터 동남해안 지역에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항시 일본의 침입을 경계했다. 또한 개방적 대외무역 정책에 의거하여 입항을 허용한 일본 민간상인들의 약탈・방화행위가 점차 심해지고, 일본첩자의 정탐활동이 그치지 않음에 따라 일본에 대한 그들의 적국인식은 오래도록 유지・강화되었다. 이러한 몽골의 일본인식은 일본에 가장 인접한 복속국 고려의 지정학적 조건과 역할을 규정짓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쿠빌라이 즉위 시기 고려의 복속이 이루어졌을 때부터 몽골 지배층은 고유한 영토관념에 근거하여 고려를 자국의 영역 안에서 동쪽 끝에 위치한 번병으로 간주하고 일본에 대한 초유・정벌 사무 전반을 위임했다. 그리고 전쟁 종료 후 고려에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일본의 침입에 대비한 최전선 군사기지로 삼았다. 이에 고려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과 임무를 정확하게 인지하여 항시 일본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그들에 관한 사안을 몽골에 충실하게 보고했다. 고려는 일찍부터 몽골과 일본초유・정벌에 관한 사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유한 세계관과 일본인식을 수용했다. 그리고 몽골과 교섭할 때 ‘유일한 적국’ 일본의 존재와 그로 인해 자신에게 부여된 특유의 존재성을 외교적 수단으로써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충렬왕은 몽골 지배층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해 일본정벌에 적극 협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고려는 자주성을 위협하는 입성책동에 저항하거나 국왕의 즉위・환국에 대한 몽골의 허가를 구할 때 그들의 대외인식에 부합하는 논법을 개발하여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데 적극 활용했다. 이에 그것이 몽골 지배층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여 고려는 소기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법의 개발과 활용은 고려의 능동적・성공적인 대몽 외교활동의 한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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