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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9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3 - 6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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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프랑스 외무부문서보관소의 외교문서들을 통해 프랑스가 1910년 한일병합 과정과 그 결과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프랑스 외교관들은 한일병합 이전 통감부의 활동과 일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지배의 효과가 크지 않았던 보호국을 병합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치밀한 준비 과정으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1908년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병합의 도구로, 1910년 경찰의 일본 위탁은 병합이 야기할 저항에 대한 사전 통제 조처로 파악하였다. 프랑스 외교관들은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이재명의 이완용 살해 미수에 대해서는 한국에 우호적인 시각을 지녔다. 하지만 프랑스는 한일병합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영국과 러시아가 일본의 한국 병합을 사전에 동의하였기에, 프랑스는 영불러일 ‘4국 협조체제’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또한 프랑스 역시 아시아 아프리카 각지에서 식민 지배를 확대해가던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배 확대를 반대할 수 없었다. 프랑스는 한일병합 직후 영사재판권 유지를 주장하였으나 일 년 뒤 영사재판권 폐지에 동의하며 한일병합조약을 공식 승인하였다. 한국 내 이해관계는 매우 작았던 프랑스가 한일병합으로 받은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프랑스 외교관들은 한일병합 직후 일본의 무단통치를 비판적으로 인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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