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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87 - 32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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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북아일랜드의 혼란기를 둘러싼 영국의 에드워드 히스 정부와 교황 바오로 6세의 교황청 관리들간의 논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921년 남북으로 분할된 후 아일랜드는 40여 년간 비교적인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으나, 1968년 이후부터 북아일랜드 내에서의 영국 국교도들의 권력 독점과 가톨릭교도들에 대한 차별적 정책으로 인한 양측 간의 갈등이 폭발하였다. 북아일랜드에 군대를 파병한 히스 정부는 북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강제 억류와 직할 통치를 포함한 강력한 조치들을 시행하였으나 아일랜드공화군의 폭력 행위를 근절시키지 못 하고 사태는 악화되어만 갔다. 북아일랜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트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히스는 영국 내에서의 개신교 단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교황 바오로 6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북아일랜드 내에서 시행되는 강제 억류와 관련하여 그 대상자와 억류 조건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규정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히스의 언질을 들은 바오로 6세는 1973년 4월 부활절 미사에서 북아일랜드의 폭력 사태를 규탄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며, 국교도 측과 가톨릭 측의 정치적 권력 분담과 아일랜드위원회의 설립 등을 골자로 한 히스 정부의 백서를 모든 아일랜드인들이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바오로 6세의 개입으로 인하여 아일랜드공화군은 그 폭력 투쟁 명분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온건파 가톨릭교도들이 영국 정부의 새 북아일랜드 정책에 예전보다 더 협조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북아일랜드의 통합주의 정치인들이중도파 정당으로 적을 옮기는 등 적극적으로 북아일랜드 문제의 정치적 해결 모색에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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