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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 - 60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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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개경의 구조는 초기에는 대개 당 장안과 낙양을 참고한 반면 송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송 개봉을 참고하는 측면이 늘어갔다. 개경 황성은 당 장안과 낙양의 황성을 모델로 했다. 개경의 大內는 초기에는 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현종대 중수를 거치면서 송 개봉 대내의 영향을 받는 측면이 늘어갔다. 궁성이 회경전 구역과 건덕전 구역으로 나뉘는 것도 송 개봉 대내의 구조와 유사했다. 당과 송에서 正旦과 冬至 大朝會가 궁성・대내의 정전에서 열렸고, 사면령이 정문에서 반포되었다. 고려 개경의 경우는 정전인 회경전(선경전)에서 중요 불교행사가 주로 열렸고, 그 다음 위상을 지닌 건덕전(대관전)에서 正旦・冬至 大朝會와 정기 朝會가 열렸다. 개경에서 팔관회와 사면령 등의 대규모 행사는 정문이 아니라 그 북쪽의 毬庭과 신봉문(의봉문)에서 행해졌다. 개경 도성은 규모가 당송 도성보다 작았지만 문수는 25개로 중국 어느 왕조의 도성보다도 많았는데, 편의성 추구와 음양풍수설이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개경에서 대내가 당 낙양처럼 도성의 북서쪽에 자리잡았지만, 낙양은 황성의 정문을 남쪽에 둠에 따라 도심이 서쪽에 치우친 반면 개경은 황성의 정문을 동쪽에 둔 결과 도심이 한가운데에 형성되었다. 개경은 태조 이래 건립된 불교사원이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었고 성종 때 유교시설이 추가되었다. 太廟와 社稷이 당은 황성 안에 위치했고 송은 내성 안에 위치했다. 반면 고려는 사직은 황성 안에 위치했지만 태묘는 외성 밖 동쪽에 위치했다. 이는 당송의 경우 中軸線에 조상숭배 시설을 둔 반면 고려의 경우 중축선이 뚜렷하지 않고 조상숭배 방식이 음양풍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당과 송 때에는 圓丘 의례가 정월과 冬至에 대개 황제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으며, 또한 太廟는 물론 도교식 조상숭배 시설인 태청궁 및 경령궁과 각각 연결을 맺고 있었다. 정월 보름 연등이 당 때 유행하더니 송 때 더욱 유행해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에서 행사가 열렸지만 송 황제는 대개 도교 사원에 행차했다. 고려에서도 元旦・冬至・圓丘 등 유교적 성격의 의례가 행해졌지만 당송과 비교하면 덜 활기를 띠었으며, 태묘와 원구와 경령전 의례가 결합하지도 않았다. 이는 고려가 불교적 국가여서 불교적 의례가 기본을 이루어 유교적 의례보다 활기를 띤 데에서 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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