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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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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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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32권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99 - 13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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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명말청초의 주자학자인 여유량의 유학사에 대한 논의를 ‘종주벽왕(宗朱闢王)’의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여유량의 논의는, 공자와 맹자로부터 시작된 유학의 역사는 주희에 이르러 하나의 정점에 도달하였지만, 이후 쇠락을 길을 걷기 시작하다가 왕수인의 등장으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결국에는 명청교체라고 하는 민족적 비극을 초래하였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자학을 정통으로 보고 양명학을 배척하는 여유량의 입장은, 종래의 명대유학사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던 황종희의 『명유학안』과는 정반대에 서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유량의 유학사 인식, 특히 양명학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고염무와 왕부지 등 청초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견해와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한편, 청초에는 양명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도 존재하고 있었다. 황종희처럼 양명학을 정통으로 보는 입장뿐만 아니라, 손기봉이나 이옹처럼 양명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명대의 주자학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거나 양명학과 주자학을 절충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청초의 다양한 유학사의 인식은, 양명학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흐름을 중심으로 명대유학사를 서술하거나, 혹은 주자학의 흐름 역시 시야에 넣으면서 양명학과 주자학의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명대유학사를 기술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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