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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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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36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7 - 3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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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년 종묘 전례를 둘러싼 논쟁은 존왕론과 행왕론의 대립이라는 사상적 구도 속에서 전개되었다. 효종의 북벌과 태조의 위화도 회군을 존왕론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그 의미를 종묘 전례에 반영할 것을 주장한 송시열의 의도는 주나라로부터 전해지는 중화문명의 정통을 밝히고 그 계승자로서 조선왕조의 정체성을 설정하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었다. 이는 주나라가 비록 미약하지만 그 정통성의 천명을 핵심으로 삼았던 공자의 󰡔춘추󰡕적 세계관의 토대에 서 있었다. 반면 위화도 회군의 존왕론적 의미를 부정하며 송시열의 종묘 논의에 반대했던 박세채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강조했다. 이는 주실의 정통성에 대한 별다른 언급없이 제후들에게 인의의 정치를 행하여 왕 노릇 할 것을 유세했던 전국시대 맹자의 불존주론을 계승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왕론의 단초는 ‘실심․심공’을 내세우며 송시열의 북벌론과 중화주의적 세계관을 비판했던 윤선거․윤증 부자의 사상과도 상통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요컨대, 이때의 종묘 논쟁과 뒤이은 노소분기는 17세기 후반 청나라가 동아시아의 주도자로 부상하던 정세 속에서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관한 상이한 세계관이 빚어낸 결과였다. 중화가 사라지고 명나라의 부활이 난망해진 상황 속에서, 조선은 유교적 담론의 범주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중화질서의 회복을 염원했던 공자와 왕도정치의 내실을 주장했던 맹자의 상이한 문제의식은 17세기 후반 조선 지식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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