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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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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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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지역과 세계 지역과 세계 제36권 제2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91 - 147 (5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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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베트남 침공(79.2.17)을 시작으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12.24)으로 마무리 되었던 1979년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은 ‘10·26사건’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그 후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군대내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한 ‘신군부’주도의 ‘12·12사태’와 ‘5·17쿠데타’를 거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민주화운동 사상(史上) 중요한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되는 시기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등의 일련의 사건은 80년대 반미(反美)운동의 도화선이 됨과 동시에 1980년 5월 광주학살에서의 미국의 역할 때문에 한국민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된 실체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처럼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기억’들은 ‘신군부’, ‘민중항쟁’ 등으로 기억되는 요소들 이외에 ‘미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독립변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의 주체’에 대해 살펴보던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상반된 삶을 살았던 두 인물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Scholastic Curiosity)을 발견할 수 있었다.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Yoon Han Bong)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Yoon Sang Won)이 바로 그들이다. 이에 본 연구는 5·18 민주화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이 두 사람이 ‘5·18’ 이라는 사건을 통해 느꼈을 법한 지정학적 인식(Geopolitical Perception)을 바탕으로 미국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항쟁의 적극적 주체로서 활동했던 윤상원이 그 당시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외쳤으나, 자신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었음과 동시에, 80년 5월 광주의 공간에 있지 못한 죄책감으로 힘들어 했던 윤한봉의 사회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역설적 상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인물에 대한 평가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했던 필자의 문제제기와 연관성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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