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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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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4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35 - 15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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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範錫(1672~174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서 본관은 청주, 자는 성뢰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 영세이다. 1695년 別試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으로서 일생에 걸쳐 많은 업적을 쌓았다. 심양 요동 사이에서 해적이 출몰하여 노략질을 하자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조정에서 한범석을 선발하여 청나라로 파견하였다. 또한 다음 해에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오게 되면서 여러 나라를 두루 경험하게 되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北漢別將이었던 그는 안성군수에 제수되어 안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당시 안성군수였던 이광적이 반란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 공석을 채우는 것이었으나 전국적 규모의 반란이 기획되었다는 것이 조정에 보고된 직후였기 때문에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신임할 수 있는 신하를 보내야 했다. 또한 안성지역은 반란군이 발생한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청주성에서 한양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이곳까지 진격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안성으로 관리를 파견할 때에는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을 만한 무인이어야 했다. 그는 이 공로로서 양무원종공신 2등에 참록되었다. 북방경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니 국경지역에서의 국방태세 정비 등 무신으로서의 기질을 발휘하였다. 北兵使로서 군비를 갖추고 훈련을 시행하기 위한 노력 등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길주목사 정양빈의 비리를 적발하는 등 강직함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특히, 운두산성 수성방략을 모색하여 북방 경비의 전략적 방안을 마련하여 폐허가 되었던 운두성이 한 동안 북방 최전선의 거점 성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범석은 이를 위해 여러 차례 왕과의 대담을 통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그는 지방수령으로서 흉년이 들면 기민을 구휼하고 병자를 치료하는 등 민생을 돌보았던 그의 행적을 보면 목민관으로서 자애로움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함경병사, 경상우병사, 황해병사, 경기수사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고『진양지』등 여러 지방지에 이름이 올라있어 진주지역의 유력인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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