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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국악원논문집 제23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35 - 6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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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정재는 대한제국기 광무년간까지 왕실 연향의 중요한 공연물로 연행되었다. 그러나 1908년에 관기제도가 폐지되고 1910년 한일병합으로 인하여 궁중정재의 전승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말에서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기간에 궁중정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논하였다. 정재의 전승과 재현의 관점에서 연행종목과 반주음악의 변화를 살피는 데에 중점을 두고 먼저 대한제국기에 조선말의 정재 전통의 전승 상황을 진단하고, 그런 다음 일제강점기하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이루어진 정재 재현 과정에서 드러나는 변화양상을 다루었다. 특히 광무 5~6년까지 존속했던 궁중정재의 연행이 일제강점기하에 일시적으로 단절되었던 상황과 1923년 순종 50회 탄신 행사와 1930년 영친왕 내외를 위하여 특별 기획으로 마련된 정재감상회 때에 시행된 정재의 재현에 주목하였다. 당시 정재를 재현하게 된 상황과 그 재현과정에 드러나는 변화 그리고 1930년 계사년의 『정재무도홀기』를 참고하여 재현이 이루어진 10개의 종목이 선정된 배경을 논하였다. 조선말~이왕직아악부 기간에 나타난 정재 반주악 및 반주형태의 변화는 매우 명확하게 파악되었다. 정재 반주악에 있어서는 조선후기에 당악과 향악의 구별이 불분명해지면서 당악정재와 향악정재에 대한 반주악도 구별 없이 사용되고, 본래 각각의 정재에 수반된 고유한 악곡들의 체계가 무너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순조대부터 가곡이 정재 반주악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반주악에 아명이 쓰이는 변화도 있었다. 조선말에 이르러 여민락만이 반주악으로 점차 쓰이지 않은 반면 가곡의 정재 반주악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조선말~대한제국기에 정재 반주음악으로 보허자령․여민락령․향당교주 등이 쓰였고 정재 반주음악은 대부분 원무곡으로 별칭되었다. 원무곡 가운데 정재 반주악으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향당교주와 보허자령이었다. 1930년 이왕직아악부에서 정재 10종목을 재현할 때에 사용한 반주악은 이전과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함녕지곡․봉화음․만년장환지곡(가곡) 등이 정재 반주악으로 쓰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왕직아악부 시기에는 정재 반주악의 변화와 더불어 그 악곡을 연주하던 악대의 편성도 크게 변하였다. 광무 5~6년까지 500년이상 유지되었던 관현합주 형태의 반주음악이 삼현육각 편성에 의한 관악합주 형태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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