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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문화재 제46권 제1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02 - 123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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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강세황(1713~1791)은 그림이나 글씨·시·제발·인장뿐만 아니라 탁월한 서화감식과 비평으로조선 후기 회화의 큰 흐름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문인서화가이다. 그는 79세의 장수를 누리며 다양한 畵目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특히 말년에 천착했던 문인화류의 사군자화는 조선 말기 묵란화 유행의 바탕을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는 조선시대 화가 중 처음으로 사군자화를 갖추어 그렸는데, 작품량이 많고 회화사적 연구 가치가 있는‘墨蘭畵’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논문은 강세황의 묵란화에 대한 기록과 작품 연구를 통해 그의 묵란화 인식과 지향을 살피고자 시도되었다. 먼저 강세황의 묵란화 기록에는 寫生과 古畵의 연습, 畵譜의 임방을 고루 중시했던 그의 작화태도가나타나 주목된다. 18세기 예림의 종장 강세황은 古人의 뜻과 정신이 집약된 고화의 굢倣을 중시했으며그림을‘寓意’와‘載道’등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즉 그의 지속적인 화보임방의 작화방식에서 修己的가치관과 회화관을 읽을 수 있다. 다음으로 그의 이런 회화관이 녹아 있는 묵란화는 양식적 분석을 통해 30~40대의 전반기와 절필기를 끝내고 군자화에 몰두했던 60대~79세인 후반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는 전반기에『개자원화전』을 주로 학습하였고, 후반기에는『십죽재서화보』나『매죽난국사보』등의 화보를 學畵하였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그의 묵란화는 全時期화보 의탁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묵란화를 다작했던 70대는화보의 의고와 임방을 주지하면서도, 그것을 능숙하게 소화해 고아하고 단아한‘표암난’을 완성하여 조선후기 묵란화 발전에 일조하였다. 마지막으로 강세황의 묵란화풍과 관련 있는 當時화가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서화합벽첩을 만들며 서화로 교유했던 심사정이나 최북의 묵란화풍에서 강세황의 영향이 감지되어 앞서 언급한 문인들의 상찬과아울러 18세기 조선 화단에서의 강세황 묵란화에 대한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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