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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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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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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문화재 제44권 제3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44 - 61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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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이기론 풍수서인『지리신법』의 저자 호순신의 생애와 저술에 대해 고찰하였다. 호순신(胡舜申)의 자는 여가(汝嘉)이다. 1091년 6월 6일에 적계(績溪)에서 호함(胡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란을 피해 가족과 함께 고향 적계를 떠나 호주 귀안현(湖州歸安縣)에 정착했다. 40세를 넘겨 형의 음보로 관직에 올라 엄주부 녹사참군(嚴州府 錄事參軍), 지소산현사(知蕭山縣事)를 지냈으며 조의대부 통판서주(朝議大夫通判舒州)에 이르러 태주 숭도관(台州崇道觀)을 맡아보다가 치사했다. 부친상을 지낸 후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세상에 전하는『강서지리신법(江西地理新法)』이 그에게 나온 것이라고 한다. 74세에「오문충고(吳門忠告)」를 지어 소주성(蘇州城)의 서문(胥門)과 사문(蛇門)을 열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1177년 3월 9일 향년 87세로 죽어 호주 귀안현에 묻혔다. 가족으로 형 호순척(胡舜陟)과조카 호자(胡仔)가 알려져 있다. 자식으로 아들 호위(胡偉) 1명이 있으며 광록대부 강서선무사(光祿大夫江西宣撫使)를 지냈다. 저술로는 일기류인『을사사주록(乙巳泗州錄)』,『 기유피난록(己酉避亂錄)』과 풍수지리 관계저술인『음양비용(陰陽備用)』,『 지리신법(地理新法)』,「 오문충고」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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