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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25권 제1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379 - 41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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企齋 申光漢(1484(성종 15)-1555(명종 10))은 16C 중종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조부인 申叔舟(1417-1475)로부터 이어 받은 가학으로 학문적 조예가 깊었고, 거기에 趙光祖(1482-1519) 등 사림파들과 교유하면서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아 개혁 성향을 지닌 실천 지식인으로서의 지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己卯士禍가 일어나자 탄핵을 받아 삼척부사로 좌천되었고, 이듬해에 파직되었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政爭에 휘말려 정치적 기반을 상실한 신광한은 이후 15년간 驪興[현 경기도 여주시]에서 칩거하였다. 본고는 신광한의 문학작품을 그의 의식세계와 연계하여 살피려는 연구 목적의 一環으로 신광한의 문학작품을 그가 거주했던 지역과 연관지어 살펴보았다. 작가가 처한 地理的 位置와 자연 환경은 어떠한 형태로든 작가의 작품 세계에 투영되는데 특히 신광한에게 京畿道 驪興과 江原道 眞珠[현 강원도 삼척시]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두 곳은 작가가 失意 후 만나게 되는 공간이라는 점과 문학 세계 구축에 있어 진전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어준 장소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흥과 강원도 진주 중에서 본고는 우선 경기도 여흥 지역이 신광한과 그의 문학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하였다. 우선, 그가 경기도 여흥 지역에 卜居한 이유를 서울과의 근접성을 염두에 둔 신원복권의 도모, 경기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 세력의 형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또한 여흥 지역을 기반으로 지어진 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감상하였다. 원형리 기재에서는 일상적인 강학과 至親의 방문에 응하는 작시 활동이 이루어졌고, 청심루와 팔대수에서는 여주목사의 초대를 받은 선비들과 그 선비와 함께 하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숱한 詩宴과 酒宴이 이루어졌으며, 신륵사에서는 멀리 떨어진 친우들과 그간의 회포를 풀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재 신광한의 경우에 국한하여 분석한 본 연구가 16C 경기도 지역에 낙향했던 일군의 문인들의 성격을 포괄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적 취약을 안고 있는 이 시기 사림 문학에 대한 지역학적 접근은 신광한의 의식세계는 물론이고 동시대에, 같은 아픔을 지니고, 같은 지역에 살았던 이들의 내면세계를 살피는 데에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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