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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24권 제1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7 - 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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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호당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慰禮山城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였던 慰禮城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논의는 주로 천안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것으로, 백제 초기의 도읍지가 한강유역이라고 믿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는 慰禮山城을 백제의 始祖 溫祚王의 初都地로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위례산성이 백제의 초도지라는 설명은 이미 『三國遺事』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 기록 중에는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기록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위례산성에 대한 고고학적인 조사가 추진되었다. 조사 결과 위례산성이 백제산성 이라면 그 만큼 백제의 初都地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전후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처음에는 백제 특유의 三足土器가 출토되기도 하고, 백제토기편으로 판단되는 토기들도 발견되어 백제산성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2차 조사와 3차 조사가 추가로 이루어지면서 점차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산성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위례산성이 백제 初都地일 가능성이 사라진 셈이다. 사실 『三國遺事』에서는 백제 초기 도읍지인 위례성을 직산지역에 비정하였지만 이보다 먼저 편찬된 『三國史記』에서는 위례성을 이름만 있고 어딘지 알 수 없는 ‘有名未詳地分’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미 『삼국사기』가 편찬될 당시(1145)에는 위례성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뜻이다. 아울러 『삼국사기』 보다는 늦지만 『삼국유사』 보다는 이른 시기에 편찬된 『海東高僧傳』(1215)의 「釋摩羅難陀」條에서도 백제가 처음 개국한 漢山을 경기도 廣州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 에는 온조왕이 처음 위례성에 즉위 하였다가 말갈과 낙랑의 공격을 받아 河南으로 遷都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만약 백제 초도지가 직산의 위례산성 이라면 말갈과 낙랑의 공격을 피하고자 천도한 곳이 오히려 말갈이나 낙랑과 가까운 곳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모순은 결국 천안 위례산성이 백제 초도지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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