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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30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9 - 4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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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金陟明이 지은 「圓光法師傳」에 따르면, 운문사는 원광법사가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복을 빌어달라는 海龍의 부탁으로 창건되었다. 또한 절 이름을 운문사라 하였다. 仁宗代 國師를 지낸 學一은 雲門寺로 下山하여 머무른다. 그는 天台宗으로 귀의하라는 義天의 권유를 끝내 거부하고 禪宗 승려로서의 절개를 지킨다. 얼마 뒤 1161년 淸道郡 戶長들이 편찬한 『郡中古籍裨補記』에 따르면, 운문사는 鵲岬에 절을 지으면 護法賢君이 나와 후삼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海龍의 권유를 받아들여 寶壤禪師가 창건하였다. 그리고 절 이름을 鵲岬寺라 하였는데, 운문사는 고려 太祖가 賜額한 이름이다. 이는 운문사의 창건자가 교종 승려인 원광이라는 이전의 주장을 선종 승려인 보양선사로 바꾼 것이다. 1277년 운문사 住持로 부임한 一然은 운문사 관련 사적을 열람하고, 김척명의 저술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다. 일연에 따르면, 그의 저술은 『고본수이전』 원광전을 바탕으로 지었는데, 여기에는 원광이 운문사를 창건한 이야기가 없다. 또 고려 초 청도군에서 작성한 공문서에 의하면, 보양선사가 운문사 주지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된다. 따라서 김척명의 저술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일연은 그것을 考證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각훈 역시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일연이 선종승려라는 입장도 반영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운문사의 창건자와 創建 緣起가 바뀌는 것은 아무래도 불교사의 흐름은 물론 종파간의 경쟁에서 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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