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23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45 - 178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877년 한국의 선교사로 파견된 뮈텔은 활동의 첫 순간부터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諡福)을 추진하라는 임무를 받고 로마와 베트남에서 그에 필요한 절차를 공부하였다. 이어 만주에서 한국 입국을 기다리는 동안 『한불자전』의 편찬을 도우며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하고, 한국에 입국한 후에도 한문을 계속 공부하며 한국의 역사와 풍속을 익혔는데 이것이 그가 한국천주교회사의 자료들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토대가 되었다. 명확한 자료 없이 행해지는 연구를 가장 경계하였던 뮈텔은 한국천주교회사 자료의 발굴에 힘을 쏟았는데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는 그가 신부로서 활동하던 때로 1880년 한국에 입국한 이후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그가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의 교수로 발탁되어 프랑스로 귀국함으로써 첫 단계는 큰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1890년 그가 주교가 되어 한국에 다시 파견된 이후 황사영 백서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의금부에 보관되어 있던 백서의 원본이 1894~1895년 사이에 우연히 발견되면서 뮈텔은 조선 정부기관에서 보관되어 있던 자료들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단계는 1920년대 이후로 뮈텔이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들을 직접 찾아 발굴하여 번역과 출판을 하는 때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뮈텔은 그동안 한국천주교회 내부에서 생산된 자료들에 의존하여 행해지던 한국천주회사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하였고, 일제강점기 초반의 한국 관련 연구에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 정부의 기록을 이용하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겼다. 실증적 사고를 갖고 있던 뮈텔은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일제에 의해 강점된 규장각의 자료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유럽에 처음 소개하였고, 구술사 연구 방법을 통해 조선 순교자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편찬함으로써 시대적으로, 방법적으로 현대의 한국 구술사 연구보다 앞선 업적을 남겼다. 또한 다양한 자료들의 발굴을 통해 한국사 안에서 천주교회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교구장으로서 서로 주고받은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뮈텔문서’를 형성해 놓았고, 매일의 크고 작은 일과 전국을 직접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들을 일기로 기록해놓음으로써 자신이 직접 역사 자료의 생산자가 되었다. 뮈텔은 다양한 연구의 성과를 내었고 그것을 자신과 한 시대를 정리하는 데에 활용하였다. 그는 한국천주교회사의 통사 편찬을 염두에 두었고, 비록 그것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기초가 되는 선교사의 약전을 작성하고, 연구의 기초가 되는 원문 자료들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이루어진 뮈텔의 연구 성과들은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또한 그는 병인박해(1866) 이후 와해된 한국천주교회의 재건운동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를 통해 그동안의 업적들을 역사적으로 정리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6)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