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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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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28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37 - 7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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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 崔瑀 집정기 史官의 활동과 성격에 관하여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사관은 國史를 기록하고 편찬하며 보관하는 일을 담당하는 관료를 가리킨다. 고려 전기 사관에는 과거에 합격한 유학자 출신의 문신을 임명하였다. 무신집권기에 이르면 장군 출신의 무신이 사관을 겸하였다. 최우정권에서는 이를 고려 전기의 방식으로 되돌려서 과거 출신의 유학자 관료를 사관에 임명하였다. 예외적으로 집정 최우가 무신으로 監修國史의 자리에 올랐다. 최우집권기 사관은 최우의 문객과 같은 측근의 문신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사관의 주요 임무는 실록과 史藁 등 국사를 기록하고 편찬하는 것이었다. 최우집권기 고종 14년에 사관들이 『명종실록』을 편찬하였다. 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편수관은 왕실 측근과 최우의 측근이었으며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대표 문신이었다. 최우는 명종의 손자 고종과의 연대를 통하여 고위 무신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실록을 편찬하는 사업을 벌였다. 사관들은 『명종실록』의 논찬을 통하여 명종의 失政과 초기 무신정권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였다. 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사관들은 최우의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고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최우집정기 사관은 史藁를 작성하지 않거나 史館에 납입하지 않았다. 최우의 잘못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관 박훤은 최우의 공적을 과장하여 그를 역사적 인물로 미화하는 역사책을 만들었다. 여러 사관들이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였고 사관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이들은 고려 왕조의 사관으로서 해야 할 직무보다 최우의 측근 문객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최우 정권 아래 사관은 정치권력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사관은 國史를 장악하려는 집정 최우의 의도에 따라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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