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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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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28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71 - 10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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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漂海錄』에 나타난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내용을 崔溥의 대화 내용과 그가 집필한 『東國通鑑』의 史論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표해록』에는 朝鮮의 歷史, 沿革에 대한 내용이 많이 기술되어 있다. 최부는 우리의 고대사가 檀君, 箕子, 衛滿에 이어 三韓, 그리고 三國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선 연혁의 시작이 중국의 堯 시대와 같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명나라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하였다. 三國 중에서 처음 나라를 세운 것은 新羅이고, 이어서 高句麗·百濟가 일어나 조선의 땅이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다고 보았다. 삼국에 대한 최부의 인식을 그가 작성한 『東國通鑑』의 史論을 통해 살펴본 바, 최부는 삼국이 각각 몇 백년, 천년을 이어간 것은 각국의 始祖들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한 것이라 기술하고, 백제, 신라, 고구려의 연혁을 각국의 왕별로 정리, 평가하였다. 신라의 경우, 敬順王이 목숨을 바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루 아침에 항복하여 나라가 망하였다며 애석해 하였는데, 이것은 『三國史記』의 저자 金富軾이 경순왕의 高麗 귀순을 높이 평가한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양자의 경순왕에 대한 평가 차이는 각자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明나라 인사들이 조선 역사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高句麗였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 전성기의 하나였던 唐나라의 공격을 고구려가 어떻게 막아낼 수 있었는지를 다수의 명나라 사람들이 질문하였다. 최부는 고구려의 군사들이 도리가 있고, 상하간에 신의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공격을 막을 수 있었으나, 淵蓋蘇文이 죄가 있기 때문에 당 太宗의 토벌은 정당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최부의 답변은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는 차이가 난다. 즉, 조선의 왕을 비롯한 지배층은 고구려가 山城에 의지하여 성을 잘 지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고, 심지어 당 太宗의 安市城 공격을 잘 막았기 때문에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와 같이, 고구려가 唐을 물리친 원인을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산성 축조와 이를 근거로 한 방어술이라는 실제적인 현상에서 찾고 있는 반면, 최부는 君臣간의 협력이라는 性理學的 입장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또한 최부와 명나라 인사들은 遼東 지역이 옛 고구려의 땅이고, 옛날의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 지금의 朝鮮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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