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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15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77 - 10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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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지장신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비교적 늦은 당대(唐代)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지장신앙이 다른 보살신앙과 다른 점은 바로 실존인물에 의하여 출현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지장신앙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일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구화산에서 신라 왕자 출신인 김지장(金地藏, 696-794)의 행화(行化)라고 하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김지장을 중심으로 지장신앙이 어떻게 발현되었는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고찰하였다. 김지장과 관련된 자료는 『구화산화성사기(九華山化城寺記)』, 『송고승전(宋高僧传)』, 『신승전(神僧傳)』 및 여러 종의 『구화산지(九華山志)』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 가운데 당대(唐代) 비관경(费冠卿)이 찬술한 『구화산화성사기』는 년대가 가장 빠른 까닭으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를 전적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분명한 사실을 유추하였다. 첫째, 김지장이 왕족출신이고 신라로부터 도래했으며, 구화산에서 홀로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러한 김지장의 수행으로부터 구화산 주변에 많은 단월(檀越)들이 형성되었고, 또한 승중(僧衆)들이 모여들었고, 그에 따라 사찰을 건축하여 ‘화성사(化城寺)’가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점차 교화가 널리 퍼지게 되자 드디어 ‘본국(신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수많은 승려들이 도래하여 무리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김지장은 철저하게 ‘좌선’ 수행을 중시했고 노동을 했다는 기사(記事)로부터 지장경전과 삼계교(三階敎)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 김지장의 입적 후에 다양한 신이(神異)가 나타나 성인(聖人)의 화신으로 모셔졌으며, 점차 구화산(九華山)이 지장보살도량(地藏菩薩道場)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김지장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어지게 된 것에는 김지장의 법명으로부터 행화(行化) 및 입적 후 여러 가지 신이(神異)가 경전에서 표현되는 바와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김지장의 입적 이후 당말(唐末)․오대(五代)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점차로 전설이 추가되어 많은 이들에게 무한한 감화를 주었다가 명대(明代)에 이르러 황명(皇命)에 의해 김지장은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인정되었으며, 구화산(九華山) 역시 공식적인 지장보살성지(地藏菩薩聖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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