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47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41 - 173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후기에 제작된 송대 성현의 고사첩은 유학의 계승과 도통을 표현한 고사인물화이다. 특히 18세기에는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 장재(張載, 1020-1077), 소옹(邵雍, 1011-1077) 사마광(司馬光, 1019-1086)등 북송 육현과 주자(朱子, 1130- 1200)의 고사를 함께 묶은 화첩이 많이 그려졌다. 북송 성현고사첩의 원형과 전범은 주자의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畵像讚)>이며, 그 제재는 성현의 재미있는 일화나 행적이다. 이러한 송대 성현을 가장 많이 도해한 작가는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정선(鄭敾, 1676-1759)이다. 정선은 유학의 도통과 학맥을 적극 수용하되 성현을 엄격하고 경직된 지도자나 통치자가 아닌, 자연 속에 기거하며 도학을 누리는 처사로 표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송대 육현은 여러 고사와 함께 장첩되거나 단독 작품으로 도해된다. 김홍도(金弘道, 1745 -?)도 송대 성현의 고사를 선호했지만, 계절감이나 우화를 강조하고 다른 고사인물과 더불어 병풍을 꾸미면서 덕과 학식을 겸비한 고사를 시각화했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성현고사상은 문묘종사의 의미를 간직한 주자의 적통이자, 풍류와 낙도를 누리는 은일 처사였다. 이는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기거하는 처사 동경과, 세속적 권력에 대한 욕망을 동시에 간직한 조선 문사의 이중적 자아를 상징한다. 또한 당대의 고사 인식과 관료들이 부가한 ‘힘의 역학’을 표상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8)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