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각사상연구원 대각사상 대각사상 제19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325 - 357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화계사의 백년 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시기 화계사와 관련한 인물들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불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실을 탐구할 수 있다. 먼저 개화운동의 최일선에서 조선의 근대화에 헌신하였던 이동인과 무불, 차홍식 등이 화계사 출신이었다. 또한 근대불교 최초의 종단 조직이었던 불교연구회를 주도한 홍월초와 김월해 역시 화계사가 배출한 고승들이었다. 본고는 이들의 활동을 통해 근대시기 화계사의 위상을 가늠하였다. 또한 1930년대 화계사 범패의 성행 사실과 1933년 이 곳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절의 위상을 살펴보았다. 화계사의 근대사는 ‘선구적’ 또는 ‘진보적’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조선의 근대화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린 개화승 이동인은 비록 비운의 결말을 맺고 말았지만, 굳게 닫혀 있었던 한국근대의 빗장을 연 선구자였다. 화계사 출신의 개화승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신분사회의 최하층에 놓여있던 승가를 역사의 주역으로 끌어올렸다. 화계사 등에서 시작된 개화와 근대화의 씨앗은 갑신정변으로 정점을 이루며 국가와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홍월초는 불교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불교연구회를 설립하여 원흥사를 기반으로 전국 사찰의 행정체계를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스님은 승가의 근대적 교육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명진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화계사 소유였던 황해도 강서사의 전답을 되찾기도 하였다. 1933년 이 곳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최종안이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 화계사는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했던 것이다. 발각되면 큰 고초를 겪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모든 것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보인다. 이처럼 화계사의 근대사는 낡은 시대를 벗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적 사건의 연속이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되어 절의 사격을 한층 높여 나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패를 중심으로 불교의례를 계승, 보급하여 전통문화 도량으로서의 위상을 일궈 나갔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