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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각사상연구원 대각사상 대각사상 제16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223 - 263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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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의 생애와 독립운동 행적을 살펴보면 그의 묘비명처럼 가시밭길을 헤쳐나간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승려로 독립운동가로 정치가로의 그의 다양한 삶은 이상과 지조로 일관하였다. 김성숙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후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2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1923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0년대 중산대학에서의 수학, 의열단에서의 활동, 그리고 광주봉기 참여, 1930년대 중국 국민당정부를 파트너로 한 조선민족전선연맹․조선의용대 활동, 특히 1938년 기강에서 개최된 한국혁명운동통일7단체회의를 계기로 중경 임시정부 체제에 합류하였다. 김성숙은 계파와 노선을 뛰어넘어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임정 참여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임정에 합류한 이후 그의 공산주의 활동 경력으로 한인 독립운동 세력 일각으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질시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임정을 통한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위해 앞장섰다. 이는 김성숙이 당시의 국제정세와 중국 국내정세 등을 파악하여 선택한 현실적 대응 방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기 반파시스트 국제통일전선을 매개로 구축된 연합국체제에서 전후 한반도 처리 문제까지 논의되고 있었다. 국제열강의 전후 한반도 처리과정에서 임정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여 한민족의 운명도 열강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김성숙은 수많은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항상 단체의 기관지 주필을 맡아 수많은 글을 남겼다. 김성숙의 생애를 완전히 복원하고 그의 사상을 제대로 다 밝히기는 어렵겠지만 김성숙이 남긴 글을 통한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김성숙에 대한 재조명과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김성숙은 이데올로기의 벽을 뛰어 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단결과 통합을 부르짖은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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