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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7권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43 - 7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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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2호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입상은 국보 81호인 同寺 아미타여래입상과 함께 719년 신라 육두품 귀족인 金志誠이 조성하였다. 이 상은 제작 연대와 발원자가 분명하고, 또 화불을 표현한 미륵보살입상으로서 동아시아 불교미술사상 매우중요한 조각이다. 감산사 미륵보살입상은 당대 인도양식의 유행을 잘 반영한 상이다. 그런데 인도풍과는 별개로 동시기 동아시아 불교 조상에서 보기 드문 새로운 모티프와 착의 표현이 출현한다. 즉 어깨 위의 커다란 매듭과 여기서 팔꿈치까지 떨어지는 넓은 끈, 絡腋 위의 커다란 매듭, 천의 밑단의 주름 처리 등이다. 상술한 모티프와착의의 표현은 현존하는 불교 조상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 어렵고, 상술한 세 가지요소를 모두 갖춘 조각 또한 현재로서는 감산사 미륵보살입상 이외에는 없다. 본고는 이것들이 무엇을 표현한 것이며, 어디에서 연원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신라에 이르는 東傳과정 등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상술한 모티프와 착의 표현이 미륵보살입상에 표현된 배경을 발원자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관련해 살펴보았다 . 미륵보살입상의 양 어깨 위에 크게 표현된 매듭과 여기서 팔꿈치까지 떨어지는 넓은 끈은 원형이 아닌 긴 줄 형태의 목걸이를 등 뒤에서 묶었을 때 표현되는매듭과 거기서 내려오는 두 줄로 추정된다. 이런 형태는 바미얀에서 처음 나타난후 서역남로를 거쳐 당대 장안 등지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낙액을 가슴위로 걸친 뒤 어깨 근처에서 커다란 매듭장식으로 처리하는 것 역시 서역, 특히북로에 위치한 키질석굴 벽화에서 매우 유행한 형식이다. 한편 천의 밑단을 평행하는 U자형 주름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중국적인 ‘吳帶當風’으로 표현되는 오도자화풍의 옷주름 처리와는 다르며 돈황에서도 서역남로에 위치한 호탄의 영향력이확대되는 8세기 후기 이후에 빈번하게 출현하고 있어 서역과의 관련성을 추정케한다. 감산사 미륵보살입상의 상술한 세 특징은 현존하는 불교 조상이나 회화와 비교할 때 돈황과의 연관성이 강한데, 그렇다고 돈황에서 직접 신라로 전래된 것으로 보긴 어렵다. 왜냐하면 감산사 미륵보살상이 돈황의 사례들보다 시기적으로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술한 특징들은 당대 장안과 낙양 등의 중앙으로부터 신라나 돈황으로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감산사 미륵보살상의 상술한 특징들이 중국 변방인 돈황보다 더 이른 시기에 출현하는 것은 발원자 김지성이 705년 견당사로서 당에 다녀온 것과 유관할것이다. 당시 신라의 견당사는 정치, 외교는 물론 문화 수입에도 큰 역할을 했는데, 특히 불교 경전의 수입에서 보듯 당의 불교문화를 실시간적으로 수입해왔다. 때문에 감산사 미륵보살상은 7세기 말 8세기 초 서역풍이 농후한 당대 중앙의 불교미술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조각으로서도 의의가 큰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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