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5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39 - 69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경상북도 경산군 팔공산 정상에 위치한 관봉 석조여래좌상의 조성 시기를 양식고찰을 통해서 9세기 전반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手印의 고찰을 통해서 기존에 약기인의 여래좌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항마촉지인의 여래좌상임을 밝혔다. 특히 불상이 팔공산의 정상에 조성된 배경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하였는데, 󰡔三國史記󰡕卷 32 祭祀條에 팔공산이 신라시대에 五岳의 하나로 국가에서 中祀로서 제사를 지내던 산임을 주목하여, 오악에 대한 전통의 山神 제사가 불교적 의례로 바뀌면서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하였다. 이 점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높은 山頂에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던 신앙적 배경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전통적으로 산악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는 곳이 불교사원으로 흡수되면서 불상이 조상된 것인데, 이 점은 국가수호를 전통의 山神 제사에만 의존했던 것에서 불교의 확산과 더불어 부처의 위신력과 교화에 의해 국가안위를 빌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전통은 경주 선도산 마애삼존불상의 예로 보건대, 五岳信仰 이전에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降魔觸地印 如來坐像이 山頂에 봉안되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로, 부석사 내지는 석굴암 불상의 조성이 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팔공산 관봉의 불상은 석굴암 본존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머리 위에 보개를 표현함으로써 나름의 새로운 도상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관봉의 불상은 재래의 산악신앙 전통이 불교와 융합하는 원초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생각되고, 그러한 전통이 일반인 마음속에 면면이 이어져 오다가 다시 현대에 와서 부활한 것으로 생각된다. 산악신앙은 治病과 祈雨, 용왕숭배 등 속성 면에서 주술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 점이 불교로 환원되어 현대에는 약사도량으로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6)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