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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1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41 - 7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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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신라불교 공인의 일등 공신인 순교자 이차돈의 유물과 유적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결과에 대한 오류와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살펴보았다. 문헌 고증을 통해 이차돈의 묘가 13세기까지 실존하고 있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었다. 특히 이차돈 순교성지로 알려진 백률사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이 없이 묘비의 발견 장소로 둔갑되고 결국에는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는 ‘자추사’와 동일한 사찰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여 통용이 되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삼국유사』, 『해동고승전』등의 문헌에서 백률사와의 관련성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사찰명의 무리한 吏讀式 해석이 이차돈의 순교유적지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자추사’라는 사찰명의 유래에 대해 기존의 이두식 해석이 아닌 사찰명을 구성하고 있는 한자가 가지고 있는 그 뜻과 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통해 흰 액체를 분출하는 刺木 즉 구지뽕나무와 무덤가를 상징하는 楸木 즉 가래나무의 상징성이 자추사라는 사찰명의 유래가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따라서 자추사는 별도로 존재했던 이차돈 추모사당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삼국유사』는 차제하더라도 조선 초 경주에서 승려생활을 했던 김시습의『梅月堂集』에서 백률사와 이차돈의 순교로 건립된 흥륜사와 관련된 시「柏栗寺樓登眺」,「柏栗寺參玉版師」,「遊金鰲錄-興輪寺址」에서 흥륜사가 이차돈의 순교로 창건되었음을 밝혔지만 백율사와 관련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백률사가 이차돈의 순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찰임을 반증하고 있다. 특히『해동고승전』의 저자 각훈은 金剛嶺에 올라 이차돈의 묘와 비석을 보았고 그곳에서 이차돈의 忌日을 맞아 음복(會食)하는 山人들을 보았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에서 밝히고 있는 금강령(금강산)의 위치를 대조해보면 이차돈의 묘와 비가 있는 곳은 백률사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답사과정에서 발견된 〈土製 小塔〉과 각종 塼과 토기, 기와편을 통해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경주 용강동 근화여고 뒷산 정상 일대가 817년 흥륜사 永秀선사 등 향도들이 이차돈을 추모하는 법회를 봉행했던 장소로 이곳이 바로 이차돈의 무덤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아울러〈이차돈순교비〉의 발견과 관련된 일련의 자료를 통해 〈순교비〉의 발견 장소가 건립 장소였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한 결과 〈순교비〉는 지금까지 알려진바 와는 달리 백률사 경내가 아닌 인근의 숲속에서 발견되었고 그 장소를 백률사 경내지로 보느냐하는 문제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백률사가 위치한 인근에는 굴불사 또한 연결 선상에 있어 〈순교비〉발견 장소와 함께 건립지를 백률사 경내로 단정 짓는 것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비석이 다른 곳에서 이전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상기해보면 〈순교비〉의 발견 장소 혹은 건립지를 백률사로 단정 짓는 일은 再考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장소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차돈의 묘역 추정은 또 하나의 가설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방치되어 왔던 이차돈의 무덤을 찾는 단초가 되어 성사의 묘역을 성역화 하는데 본 논문이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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