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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공안행정학회 한국공안행정학회보 한국공안행정학회보 제22권 제3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67 - 10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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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毅宗) 24년(1170) 정중부 등에 의해 일어난 무신정변(武臣政變)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따라서 이 정변이 고려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며, 경찰조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려전기에는 경찰활동이 官制(행정기관의 설치ㆍ조직 및 직무범위 등에 관한 제도)와 兵制(군사상의 모든 제도) 상의 경찰관련업무와 관련된 기구들에 의해서 경찰권과 司法權 그리고 범죄예방과 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신정변에 의해 무인전단(武人專斷)의 정치가 시작되면서 고려전기의 공식적인 官制나 兵制 등의 통치기구는 형식상 존재하였을 뿐, 실질적인 정치운영과 경찰권 행사는 公的인 기구인 중방(重房), 야별초(異說있음) 그리고 私的인 지배기구로서 도방(都房), 교정별감, 정방(政房), 마별초 등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중방은 무신정권이 성립되면서 군사(軍事)를 비롯하여 경찰, 형옥(刑獄), 인사 등에 있어서 王權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권력을 행사하였다. 그 후 최충헌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교정도감이 중방의 역할을 하였으며, 중방은 형식적인 제도로 고려말까지 존속하였으나 경찰관련기관으로서의 존재가치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무신정권기의 지배기구 가운데 가장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로 삼별초의 기원이 되는 야별초를 들 수 있다. 야별초는 원래 최우가 도둑을 막기 위하여 편성한 「私兵化된 公兵」으로서(異說있음), 후에 경찰 및 刑政에 있어서 포도금란(捕盜禁亂), 형옥, 죄수를 심문하는 일, 경호(친위대) 그리고 대몽항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전투부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찰사적 측면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야별초가 갖는 역사적 의미이다. 첫째, 고려전기까지 경찰활동은 官制와 兵制를 축으로 하여 수도 개성에 한정하여 범죄예방과 통제가 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무신정권기인 최우 때에 야별초가 설치되면서 순찰과 도적예방 및 폭행단속 등의 경찰고유업무가 최초로 중앙에서 지방까지 확산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야별초는 전국적으로 경찰고유의 독자적인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경찰역사의 연속성 측면을 들 수 있다. 고려말 원종(元宗)11년에 야별초가 폐지되고 난 후 충렬왕 때에 元의 제도의 영향을 받아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순찰, 포도(捕盜), 刑獄 등 관계의 일을 맡아하던 순마소(후에 순군만호부로 개칭)가 설치되고, 그 후 전국에 33개 순포(巡捕:오늘날의 자빙경찰청 단위)가 설치되어 전국 치안을 장악하려던 의도는 양적이나 질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동일선상에서 논의되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러한 점 등에서 경찰역사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고, 이런 측면에서 무신정권기의 경찰조직과 기능을 연구하는 필요성 또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이외에도 몇 개의 역사적 의미는 본문에서 기술하였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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