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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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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대동철학 제64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05 - 22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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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슨은 고립된 언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데, 그 주된 근거는 삼각 작용 논증이다. 그런데 삼각 작용 논증의 결과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언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두 사람을 포함하는 어떤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데이빗슨은 두 번째 사람 없이는 언어가 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반드시 규약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두 번째 사람은 누구인가? 이 두 번째 사람은 공동체의 구성원일 필요가 없는가? 데이빗슨의 화자와 해석자는 서로를 의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들의 삼각 작용은 공동의 실천이 아니게 된다. 데이빗슨의 삼각 작용은 공동의 실천이 아니라 상호 해석의 방식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렇다면 삼각 작용에서 언어와 사유가 나온다는 데이빗슨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데이빗슨에 의하면 화자와 청자의 개인 방언의 의미는 삼각 작용의 산물이다. 이 삼각 작용은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는 공동의 실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데이빗슨이 습지 인간 사유 실험으로 주장하듯이, 의미는 과거의 인과적 상호작용, 즉 역사에 근거한다. 그 인과적 역사는 타자와의 상호작용의 역사다. 삼각 작용하는 두 생명체는 세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의미는 개인들간의 공동의 또는 공유된 실천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비슨의 생각과 달리 삼각 작용하는 두 사람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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