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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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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무용사학회 한국무용사학 한국무용사학 제12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67 - 9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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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봉건사회 경제체제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은 봉건통치 계급의 무자비한착취와 외세 자본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의식으로 발전되어갔다. 이러한 때에1860년 최제우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을 창시하였고, 삽시간에 민중들의 호응을 얻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어 1861년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칼노래를 짓고 그희열을 칼춤으로 승화시켰다. 이것이 <검결>과 용담검무의 시작이었다. 달밤에 산 정상에 올라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지낸 뒤 모두가 하나되어 <검결>을 부르며 신명나게 검무를 추었다. 이때 춘 검무는 기존 무용사에서 거론되던 검무와는 달리 목검을 들고 무예적 정신수양에 목표를 두었던 것으로 이 <검결>과 검무가 역성혁명의 빌미로 작용하여최제우는 처형당하게 된다. 그 후 <검결>은 관변기록을 통해 남게 되었고 검무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동학교도들조차 대외적으로는 내놓고 거론하기를 꺼려했기때문이다. 그러나 검무는 동학의 핵심사상이 반영되어 표출된 춤으로 인본주의와 후천개벽, 평등사상, 각자위심은 물론 『정감록』에 담겨진 풍수사상 및 민족무예의 현묘지도(풍류도)가 담겨져 있는 제의적, 상무적, 강신무적인 춤이었다. 최제우의 사상과 그 표출양상은 조정을 불안하게 하는 한편 민중들에게는 도탄에 빠진 생활을 극복할 희망이자실천방도의 하나로 기능했으며 훗날 동학혁명을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 민중사 속에서중요한 위치에 있던 검무의 재발견과 재조명은 당시의 민족무예와 『정감록』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여겨지며, 민족춤의 하나로서 그 위치를 바로잡아 줘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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