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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제38권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57 - 28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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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관왕묘는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 역대 제왕의 존숭과 종교적 신격화 등을 통해서 일반화·국제화 될 수 있었다. 조선의 관왕묘는 壬辰倭亂을 계기로 조선에 건립된 이후로 시대에 따라 그 위상이 점차 격상되는 양상이 보였다. 조선 지식인의 관왕묘 소재 詩文은 조선에 관왕묘가 건립된 이후로 작품이 다양해 졌고, 관왕묘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燕行詩에서는 壯鎭堡 關王廟를 소재로한 작품이 많았다. 조선 지식인들의 관왕묘 소재 詩文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인식양상으로, 먼저 再造之恩에 의해서 조선 지식인들의 관왕묘 인식 양상이 변모한다는 점이다. 許筠이나 柳夢寅처럼 관왕묘가 文廟보다 존숭되거나 지나치게 관우 숭배에 경도되어 淫祀的 성격을 보이는 점에 대하여 비판적인식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도 조선의 관왕묘에 대해서는 비판이 완화되었고, 裵應褧같은 지식인들은 공경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조선의 관왕묘를 再造之恩의 기념공간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조선의 관왕묘는 朝․明間의 間文化的 交流에 의해서 忠義의 表象空間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조선의 관왕묘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관왕묘와 유사하게 ‘護國攘夷’의 염원공간이었다. 다만 조선은 ‘蜀漢正統論’을 근간으로 관왕묘를 性理學的 忠義의 表象空間으로 인식하려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여기에 蜀漢正統論을 근간으로 한 『三國志演義』의 유행도 관우의 忠義를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또한 관우처럼 不事二君의 자세를 다짐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인다. 조선후기를 재조명하면서 조선학자와 관리가 불가능해 보였던 수준까지 性理學 原則에 따라 사회정치학적 환경을 개편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明淸 交替期 조선의 관왕묘야 말로 이러한 평가에 부합되는 가장 구체적인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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