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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제35권
발행연도
2012
수록면
191 - 235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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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6세기 이후 세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은을 수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포르투갈과 같은 서방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보다 조금 앞선 15세기 중반에 일본과 근접한 거리에 위치한 유구(琉球:류큐. 현 오키나와) 왕국이 ‘만국의 다리’를 표방했는데, 곧 조선·중국·일본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와 태국·베트남·라오스·미얀마 등의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의미였다. 일찍이 ‘무역(貿易)’과 ‘상선(商船)’이란 키워드를 중시한 일본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쿠로시오 해류’라는 천연 조건을 갖춘 유구를 끊임없이 주목하다가, 결국 19세기 말에 이르러선 온전한 병합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19세기 조선과 중국의 문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던가. 일단 조선과 중국은 정황상 일본·유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본과 유구를 각기 18세기 중반과 19세기 후반까지 자신들의 속국으로 취급했던 중국은 두 나라의 교역 루트와 유통 물품에 대해선 관심을 보였지만, 그들의 서적이나 문학과 관련해선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 반해 조선은 16세기말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일본·유구와의 관계를 재편하게 되었다. 일본과 유구, 혹은 유구를 자신의 세력 아래에 두려는 일본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19세기에 조선 지식인이 일본과 유구를 상업 강대국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문자와 문학을 주목한 일련의 과정은 중국 지식인의 행보와 같으면서도 다른 결을 지닌다. 해외의 서적이라면 중국에서 들여오던 기존 관례에서 벗어나, 통신사를 통해 직수입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를 적극 활용한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태도는 국제 동향을 예리하게 파악한 일례이다. 19세기 문인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물론, 시화집(詩話集)으로 분류되는 『시가점등(詩家點燈)』 가운데도 『화한삼재도회』의 내용을 파격적으로 수용했다. 『시가점등』에 수록된 일본 관련 기록은 일본 시의 기원을 비롯하여 일본 승려나 사신이 쓴 시가 총 6편이다. 또한, 유구 관련 작품은 유구 시의 기원과 유구죽지사를 포함하여 총 4편이다. 일본과 관련해선 문필이 뛰어난 작가를 대상으로 기술하였고, 유구와 관련해선 조선·중국·일본과 얽힌 일화를 바탕으로 엮었다는 특색이 있다. 그 밖에 일목국(一目國), 회회국(回回國:아라비아), 교지국(交趾國:베트남 북부), 안남국(安南國:베트남), 점성국(占城國:베트남 남부)의 작품이 『시가점등』에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울러 주목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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