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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41권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97 - 22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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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 지역에 세거해온 무임 가문의 하나인 함종 어씨는 양란을 전후해 동래로 이주ㆍ정착하여 성장한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무임가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내부는 우리들의 기대와 달리 매우 복잡하다. 크게 세 가계로 분화된 함종 어씨들은 각기 동래의 입향조인 魚信湝의 세 아들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들 각각의 후손들은 사회 지위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와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장남 魚奉仁의 후손들은 무임뿐 아니라 이서 직책도 역임하였다. 이 중 무임의 경우 주로 하급 직책을 맡았을 뿐인데 19세기 중엽 이후 갑자기, 이 지역 향반들이 오랫동안 독점해왔던, 무임의 최고위직인 중군과 상급 이서를 배출하였다. 차남 魚奉善의 가계는 하급 무임에서 출발하여 한때 별장이나 백총 등 상급 무임을 배출하였으나 이후 후손들의 향방이 파악되지 않아 몰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아들 魚奉日 가계의 경우는 아주 각별한데 이들 역시 다른 가계들과 마찬가지로 하급 무임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과 급제와 효행인으로서 표창을 받는 등 7대에 걸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이들은 점차 지위를 상승시켜 19세기 중엽에 中軍을 배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가계도를 작성하고 <세보>의 간행에 참여하는 등 사족의 후예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국가로부터 효행인으로 표창을 받아 유교 도덕의 체현자로서 지역의 양반들에게 인정받는 등 이들의 지위 상승 노력은 사족의 문화 상징을 傳有하는 작업으로도 전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무임들의 명단을 수록한 武廳先生案과 이서들의 명단을 수록한 府廳先生案에 등재된 어씨의 60% 정도를 자신들의 󰡔세보󰡕에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족보에 世系를 올리는 것이 사회 지위의 상승과 유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조선후기 사회에서 위로 향한 노력과 사회 지위의 몰락이라는 상반된 동향이 이렇게 뚜렷한 것은 단지 함종 어씨라는 한 사례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동래 지역 무임 집단들의 사회적 분화를 보여주며 이것은 위를 향한 역동성과 더불어 사회 지위의 하락 추세가 두드러졌던 양상을 반영한다. 전쟁 등과 같은 격동기가 아닌 시기에 전개된 이 같은 상반된 변화는 동래 사회의 체제 안정이 이렇듯 역동적이면서도 점진적인 사회 이동에서 가능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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