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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조직신학회 한국조직신학논총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1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71 - 10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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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그 후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한국 민족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고, 희망을 주었다. 이것에 힘입어 한국교회는 세계가 깜짝 놀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침체기를맞이했고, 여전히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이미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 위기에 대한 진단과 극복을 위한 여러 방안들도 나왔다. 그 방안들이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이원규 교수의한국교회에 대한 분석이 눈길을 끈다. 그는『한국교회의 사회학적 이해』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를“탈사회화”에 있다고 진단한다. 탈사회화의 원인에 대해 그는 교회가 개인구원을 특히 강조함으로써, 구원을 공동체적 사건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분석은 매우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성서가 말하는 구원은 개인의 신앙고백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개별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동체적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한 사람의 구원을 공동체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고, 개별적인혹은 사적인 사건으로 본다. 구원이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되면서, 교회역시 개 교회주의로 전락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 혹은 개체교회를 중시하는 경향은 결국 교회가 사회공동체를 등한시하는 결과로 나타날수밖에 없다. 교회의 탈사회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은준관 박사가 지적하는“교직주의”(clericalism)와“교권주의”(ecclesiasticalism)를 들 수있을 것이다. 은 박사에 따르면, 교직주의와 교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할 선교적 책임보다“교리,제도, 기구, 교단”을 우선시하는 타락의 길을 재촉한다. 교리나 제도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이 더욱 중요시될 경우, 세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하는 제자의 삶, 혹은 선교적 삶은 뒤로 밀려갈 수밖에없고, 교회는 게토화 되어간다. 이럴 경우, 교회는 사회와 점점 유리되고, 사람들은 교회가“그들의 공동체”일 뿐, 우리를 위한 공동체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과 유리된 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성서가 제시하는 교회의 사명과 맞지 않는다. 성서적인 관점에서, 교회는 자신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이 믿도록 증거 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교에 대한 여러관점들이 있겠지만, 몰트만의 이해가 성서적인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따르면, 선교는 복음의 선포와 성례전의 집행, 그리고세상을 향한 봉사로 구분된다. 몰트만의 선교이해의 빛에서, 한국교회 는 복음 선포와 성례전 집행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교회보다 잘 수행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의미의 선교, 즉 세상을 향한 봉사는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은 노치준 선생의 한국교회의 재정에 대한 연구 논문이 잘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예산 가운데, 선교비에4.8%, 교육비에7.9%만 배정되어 있는 반면, 교회 자체 유지를 위해서는 약 85%가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을 향한 봉사를 소홀히 한 결과, 교회는 탈사회적인 공동체로 변질되고 있다. 만일 한국교회가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예수님의경고처럼,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마 5:13).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탈사회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사회에 유익을 주는 공동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진정한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며, 동시에한국교회가 갱신되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니케아(325년)와 콘스탄티노플(381년) 공의회를통해 확정된 교회의 네 표지를 살펴볼 것이다.“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이라는 교회의 네 표지는 이단이나 분리주의자들에 대항해서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세웠고, 이후, 이 표지는 참된 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하는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특히 루터와 칼빈은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하는 표지로 말씀과 성례전을 들었다. 그들은 교회의 네 표지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순수한 말씀이 들려지고,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되는 그것이 참교회의 표지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네 표지와 종교개혁자들의두 표지를 어떻게 다루어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김균진 교수는 네 표지가 참 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종교개혁자들의 두 표지도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못한다고 하면서, 양자를 상호보완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말씀과 성례전이 참 교회가 무엇인지를“교회 내부로부터 묘사”한다면,“하나 됨,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은“교회 밖으로부터”참 교회를 묘사한다. 김 교수의 주장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말씀과 성례전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고, 하나됨,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사회적이란 비판에 직면한 한국교회가 갱신되기 위해서는,내부의 두 표지보다, 교회를 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네 표지를살펴보는 일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 특히 네 표지에 대한 몰트만의 재해석은 한국교회를 위한 매우 적절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는 네 표지를 단지 이단에 대해 참 교회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불의와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서,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언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한국교회가 탈사회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세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선교 공동체로서 갱신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교회의 네 표지에 대한 몰트만의 재해석을 소개하려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몰트만이 보여주는 교회표지 전체에 대한이해를 다루고, 또한 그 하나하나에 대한 그의 재해석을 살펴볼 것이며, 나아가 이것이 탈사회적이란 비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볼 것이다.

Moltmann’s reinterpretation of the marks of the church gives an important message to the Korean Church which has been criticized as a community separated from society. For his reinterpretation suggests a way that the Korean Church can get out of the criticism. In short,Moltmann’s understanding of the church’s marks emphasizes that the church should not be separated from the world, but has to perform its mission in the world. This indicates a spirituality of participation, not escape.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there was a tradition giving up everything secular. The monasticism in the middle ages was an example. But this was an attitude to imitate Christ who gave up all things and became poor voluntarily. Thus it was not a simple escape from the world. However, the Korean Church possesses what it should give up,such as riches and power, but it has lost what it should keep, such as freedom, poverty, partisanship, and suffering that Christ possessed. If the Church had preserved these values, it would not have faced with this kind of crisis. Now the Korean Church must again find those values that it has lost just as what Moltmann suggests. The Korean Church should endeavor to perform the unity in freedom, the sanctification in poverty, the universality in partisanship, and apostolicity in suffering. In this way, the Korean Church can become a beloved Christian community by the Korean people just as it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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