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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58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43 - 8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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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을 건국 초기부터 수립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수군전략과 이에 기반하여 추진되었던 수군활동을 중심으로 특별히 전쟁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고려가 수군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태봉말기에 추진된 일련의 수군력 증강 작업과 태봉 당대부터 후삼국 통일을 목표로 실천하였던 수군전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태봉말기의 수군력 증강은 전함의 증치와 이를 지휘통솔할 장수 및 군관, 말단의 일반 병졸의 충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려가 수군력을 증강한 이유는 태봉정권하부터 수립하여 추진해왔던 서남해역 해상권 장악과 전쟁 재원확보를 골자로 하는 수군전략을 추진함으로써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남해역의 주요 해안지방에 대한 원정작전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초의 어수선한 정국에서 해상권 확대는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대신에 고려는 후삼국 통일을 이룩하는데 소요되는 전쟁재원을 서남해안 지방으로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고려는 이를 위해 도항사와 나주도대행대를 설치하는 등 수군활동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고려는 수군활동 기반 강화를 통한 전쟁재원 확보를 추진하면서 해상권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927년 4월 고려는 해군장군 영창과 능식으로 하여금 강주를 비롯한 인근 해안지방을 공략하는 해상원정을 추진하였다. 고려 수군의 강주진출은 태봉 당대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해상권의 범위를 남해안 지방에까지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동년 9월 공산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후백제의 수군이 나주로 통하는 서남해역 해상교통로를 봉쇄하면서부터는 해상권 확대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남해안 방면으로 해상권을 확대하기보다는 송악과 나주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의 수군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후백제의 수군이 개성 앞바다까지 위협을 가해 오던 상황에서 고려의 해상권 장악의 범위는 나주를 핵심으로 하는 서남해역에 국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방향으로 집중한 해상교통 보장 노력에 따라 고려는 나주로 탈출하여 귀부를 요청해온 후백제왕 견훤을 호송해옴으로써 후삼국 통일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태봉 정권하에서부터 추진해왔던 수군전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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