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53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29 - 50 (2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후쿠오카번(福岡藩)은 1636년의 제4차부터 1764년의 제11차까지 통신사를 8회 맞이하였는데, 그때마다 아이노시마(藍島)에 객관을 지어 정중히 응대하였다. 항상 통교(通交)가 있었던 쓰시마번(對馬藩)을 제외하면 이키에서의 접대를 담당했던 히라도번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응대하여, 다른 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후쿠오카번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필담창수의 상황을 살펴보면, 필담창수집의 편집이 자주 미뤄졌을 가능성이 드러난다. 내가 조사한 창화집의 작품 수를 간행본과 사본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별집(別集: 일본인이 주로 개인적으로 응수하고 있는 내용)과 총집(總集: 일본인이 복수로 응수하고 있는 내용)으로 나누어 보면, 회를 거듭할 때마다 그 필담창수집의 숫자가 늘어났다. 제12차는 쓰시마라는 하나의 나라에서만 응대했기 때문에, 분카(文化) 연간의 필담집이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총집의 출판 횟수가 많았던 것은 출판업자가 계획하여 펴낸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이 게재되었다면 꽤 많은 책자라도 팔릴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별집은 개인이 그에 상응하는 출판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출판하기가 어려웠다. 기념으로 남겨둔 사람이나 지인에게 배포하려는 사람, 스스로 이름을 알리려고 생각한 사람 정도가 별집을 자비 출판했을 것이다. 같은 창화집이라도 간행본과 사본의 형태에 따라 출판 이유가 달라진다. 간행본에 실리지 않은 것과 실릴 수 없었던 것의 의미 차이도 있다. 후쿠오카번에 있어서 쿠시다(櫛田)나 카메이(?井)는 어째서 간행본에 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바로 그것이다. 시의 창화가 중심인 책과 필담이 중심을 이루는 책의 차이는 무엇인가. 앞서 나온 어촉서(御觸書)에 따르면 린케(林家)의 서적은 시 창화가 중심이 아닐 수 없다. 히코네(彦根)번처럼 번사(藩士)의 창화를 금지했던 번도 있었다. 막부나 번에 종사하고 있던 학자와 재야의 학자와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시점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앞으로는 전체를 파악하고 간행본과 사본 등의 의도를 비교해 나가는 시점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5)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