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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49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31 - 176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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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에서 3분과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바뀌어 왔으며, 그것이 역사연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추적하였다. 3분과제도의 이식ㆍ재현ㆍ정착 과정을 통해 한국 역사학에 내재된 식민성, 분절성, 분단성을 찾아보려 하였다. 일본의 역사학은 ‘(서)유럽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따라 자신만의 ‘일본적 오리엔탈리즘’ 및 침략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일본만의 특이한 제도인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3분과제도를 정착시켰다. 식민지 조선의 官學을 상징하는 경성제국대학에서는 서양사 대신에 조선사를 포함시켜 국사, 동양사, 조선사라는 식민지 역사학의 체계를 정형화하였다. 私學의 역사학을 대표한 연희전문학교에서도 국사, 일본사 중심의 동양사, 서양사라는 강의제도를 유지했지만, 역사인식에서 민족주의적인 학풍을 유지하였다. 해방 직후부터 학회가 만들어지고 대학에 사학과가 설치되었지만, 일본이 만든 3분과제도는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틀로 유지되었다. 강의 또한 별개로 진행되었다. 특히 경성(서울)대학 사학과의 경우 전공별로 연구실을 두고 일본의 講座制와 비슷하게 운영하였다. 해방공간에 진행되던 친일파 청산을 둘러싼 갈등, 격화되고 있던 이념갈등과 분단정권 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학문적 경향은 논쟁과 경쟁을 동반하지 않은 채 문헌고증사학에 의해 압도되어 갔다. 특히 한국전쟁은 사관 없는 역사연구를, 사료가 말하는 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연구를, 한국적 현실과 괴리된 역사연구를 합리화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 3분과제도와 연구방법의 획일화는 1950년대 들어 학회의 등장으로 더욱 고착화하였다. 일본 지배하에서 정착한 유럽 중심, 중국 副中心의 역사인식이 더욱 확대 재생산되어 갔다. 한국의 현실에서 특히 필요했던 식민사관의 극복을 역사연구를 통해 실현하지 못하였다. 비록 1960년대 들어 한국사 학계와 1990년대 들어 서양사 학계에서 이들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 오고 있지만, 식민지 잔재인 3분과제도와 문헌고증사학을 극복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한국 현대역사학에 내재된 식민성, 분절성, 분단성의 한계도 뛰어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제도와 인식의 식민성과 더불어 역사학의 제도와 내적 인식에 잔존해 있는 분절성, 분단성을 극복하고, 21세기 들어 심화하고 있는 주변국과의 역사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첩되어 있는 삼중의 주변부를 찾는 ‘지역으로서의 동아시아’를 발견하는 길도 하나의 선택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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