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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76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53 - 18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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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남한의 석유시장은 한미석유협정체제를 통해 미국계 석유회사의 유통구조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시작된 미군의 개입은 석유를 단순한 경제적 상품이 아닌, 미국의 대한정책 개입의 도구로 활용하게 만들었다. 한․미 사이에 불거진 UN군대여금 지불 문제는 1954년 10월 ‘석유파동’을 가져왔고, 그 피해 결과 한국정부는 ‘유류행정의 자주권 확보’를 강구하며, 그 대책 가운데 하나로 국내 석유의 자체생산 방안을 추진해 갔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장치산업인 정유공장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과 함께 기술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서는 자체적인 해결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승만 정부는 그 타개의 방법으로 미국계 석유회사를 통한 투자유치를 모색하는 한편, 국내 기술자를 통해 울산 정유공장의 재건계획을 수립해 갔다. 1954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 석유기업 내부의 경쟁 확대와 동북아시아 석유시장의 재편과 맞물리면서 차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대만 석유공사를 매개로 한국을 방문한 걸프는 스탠다드와 칼텍스, 쉘이 장악한 한국 시장에 대해 관심과 함께 진출 의지를 보였다. 걸프의 이러한 관심은 외국 투자자 유치에 나섰던 밴플리트를 통해 정부에 전달되었고, 걸프는 투자의 조건으로 파슨스가 정유공장을 설계하고 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경제조정관 원과 전민제 등의 반발을 샀다. 한편, 1954년 상공부장관 안동혁의 추천으로 등용된 전민제는 울산 정유공장 관리인으로서 공장 재건계획을 지속적으로 수립해 갔다. 그는 포스터 휠러의 설리반과 웨스트의 도움을 통해 국제 석유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고, 국내 정유공장 건설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 전민제는 정부 보유불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외화 문제를 해결하는 ‘내자 중심의 건설방안’을 세워갔다. 정부는 상공부 내에 정유공장건설추진위원회를 설치해 당시까지 진행된 여러 노력과 대책 등을 종합해 정유공장의 입지와 건설 방향을 잡아 갔다. 하지만 4․19혁명의 발발로 정권이 붕괴되면서, 이 사업 역시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등장한 군사정부는 전민제와 나윤호 등 1950년대 정유사업을 주도한 인물들을 등용해 성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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