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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3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63 - 20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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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廂記』는 16세기 초엽 혹은 중엽부터 18세기 초엽까지 일부 문인 계층에게 수용되다가, 18세기 초엽부터는 고급 문인 계층을 비롯하여 사행 경험이 있는 관원, 중국의 영향을 받은 역관 등 중인 계층을 중심으로 많은 애독자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초엽까지는 더 넓은 범위의 문인과 중인 계층에 전파되어 조선에서 西廂記 애호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고, 19세기 중엽부터 한글 식자층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이후, 20세기 초엽에는 西廂記 번역본이 활발하게 출판되면서 西廂記는 더욱 대중적인 독서물이 되었다. 明刊本 『西廂記』가 수용되었던 『西廂記』 유입 초기, 즉 17세기 중엽까지 『西廂記』는 광범한 문인 계층에게 수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金聖嘆本 『西廂記』의 유입 이후 비로소 독자층이 확대되었다. 이후 조선후기 『西廂記󰡕 수용에서 金聖嘆本『西廂記』가 압도적 우세를 차지하였다. 이는 당시 문인들이 金聖嘆의 문체 및 세계관․문학관에 경도되었던 것과 관련이 깊다. 또한, 국내에서 『西廂記』가 완전한 독서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내 독자들은 『西廂記』의 臺本으로서의 성격을 비교적 더 많이 간직한 明刊本보다는『西廂記』를 거의 소설과 같은 것으로 다루었던 金聖嘆本 『西廂記』를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와 달리 조선에서는 『西廂記』를 음란성 시비로부터 옹호하려는 논리가 발달하지 않았다. 이는 중국에서는 『西廂記』 전파의 매체로서『西廂記』의 상업적 출판물이 주를 이루었던 반면, 조선에서는『西廂記』가 주로 필사본을 통해 전파되었던 것과 연관이 있다. 즉, 중국에서는 출판 주체들이 책의 서두에 『西廂記』를 옹호하는 서문을 실어 독자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조선에서는 『西廂記』필사의 주체는 자신이 쓴 서문에서 독자를 설득하기보다는『西廂記』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피력하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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