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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79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77 - 30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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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단성민란을 전후한 시기의 향리층의 존재양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필자는 권력의 하수인이자 행정실무자였던 향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19세기의위기 상황에 대처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중앙과 지방의 지배세력들은 그들을 어떤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조선후기 사회의 지속과 변동문제에 대해 재검토 하였다. 단성민란의 과정속에서 민들의 주된 공격대상이었던 향리층들은 이후 시기에도여전히 전통의 향리가문을 중심으로 군현의 행정을 전담하고 있었다. 민란주도층은향리 포흠의 핵심인물들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중앙정부의 대표자들은 이를묵살하였고, 그들을 행정현장에 복귀시켰다. 중앙정부나 지방수령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행정조직을 통한 민의 통치가 더 급선무였던 것이다. 이와 함께, 단성 향리들은 조세문제에 있어서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지역사족과도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족인 김인섭과의 관계속에서 확인된다. 단성과 인근 지역의 향리들은 수시로 김인섭을방문하고 있었다. 방문 이유는 조세관련 사항, 중앙과 지방의 소식 전달, 문안 인사,개인적 부탁 등 다양했다. 이 과정에서 향리들이 김인섭의 개인적 편의를 봐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와 같이 단성민란 발생의 주요인 중 하나였던 기존 향리층이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정도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여러 세대를거치면서 익혀온 전문행정능력에 대한 중앙 및 지방정부의 신뢰이며, 다른 하나는지역 내외의 여러 세력과 맺고 있었던 네트워크의 구축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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